“안 하면 3,000만 원 물어내세요”…수십억 들여 다 깔았더니 운전자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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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충전기 의무화했다가 제외…현장에 남은 허탈감
수십억 들여 설치했는데, 정책은 뒤늦게 방향 전환
안전 우려가 판 바꿨지만 행정 신뢰 논란은 여전
학교 전기차 충전기 제외
학교 전기차 충전기 제외 / 출처 : 연합뉴스

경기도의회가 최근 학교를 전기차 충전시설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교육 현장에 묘한 허탈감이 번지고 있다. 불과 몇 해 전 “법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공사를 서둘렀던 학교들이기 때문이다.

충전기 설치를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주차장을 파내고, 전기 설비를 증설하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정책의 방향이 달라졌다.

충전기 설치에 수십억 투입,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흔적

출발점은 2022년 개정된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이었다. 주차면 50면 이상 공공시설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기준이 적용되면서, 다수의 학교가 의무 대상에 포함됐다.

문제는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생과 교직원이 주 이용자인 학교 주차장은 일반 공공시설과 달리 외부 개방이 제한적이고, 전기 사용 여력이나 안전 관리 체계도 제각각이었다.

학교 전기차 충전기 제외
학교 전기차 충전기 제외 / 출처 : 연합뉴스

그럼에도 기준은 일률적으로 적용됐고, 미설치 시 최대 3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이 예고됐다.

그 사이 실제 공사는 진행됐다. 경기도 내에서만 130여 개 학교에 300대가 넘는 충전기가 설치됐다.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완속 충전기 한 대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전기 공사와 토목, 부대 설비를 포함해 수백만 원 수준이다.

이를 단순 계산해도 수십억 원의 비용이 투입된 셈이다. 학교 예산이 직접 들어간 경우도 있었고, 충전 사업자가 비용을 부담한 사례도 섞여 있지만, 어쨌든 한 번 들어간 공사는 되돌릴 수 없는 지출로 남는다.

전기차 화재가 던진 질문, “학교까지 꼭 필요했나”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바꾼 것은 안전 이슈였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 사고가 보도되면서, 충전기가 주차 공간을 차지해 불편하다는 운전자들의 불만과 학생들이 머무는 공간 인근 주차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학교 전기차 충전기 제외
학교 전기차 충전기 제외 / 출처 : 연합뉴스

도교육청은 결국 법제처에 질의했고, 학교를 조례로 의무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해석을 받아냈다. 이번 조례 개정은 그 결과물이다.

정책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장의 시선은 복잡하다. 이미 설치를 마친 학교와 이제 막 공사를 준비하던 학교 사이에는 체감 온도 차가 크다. 무엇보다 “하라 해서 했는데, 이제는 안 해도 된다”는 메시지가 남긴 행정적 신뢰의 상처는 가볍지 않다.

다만 이번 조치가 설치된 충전기를 모두 없애겠다는 뜻은 아니다. 강제의 고리를 풀어주고, 학교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한 조정에 가깝다.

결국 이 사안은 친환경 정책과 안전, 행정의 속도가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미 투입된 비용과 향후 운영 방향이 어떤 선택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은 정책 변화가 남긴 흔적을 돌아보며, 이후의 흐름을 지켜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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