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개 비슷하다. “기술력은 한국이 한 수 위지만, 가격이 워낙 싸서 위협적이다”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글로벌 수주전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이들이 체감하는 중국 배터리의 진짜 공포는 단순히 셀(Cell) 단가가 몇 달러 싸다는 데 있지 않다.
배터리를 사면 거대한 국가 자본을 등에 업고 ‘보험+금융+리스크 관리’를 통째로 묶어 제공하는 그들의 압도적인 ‘금융 패키지 영업 방식’이 한국 배터리 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단순한 부품 납품을 넘어 ‘리스크 제로’를 판다
외신에 따르면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은 최근 중국수출입은행 산하 국영 보험사인 중국수출신용보험공사(SINOSURE·시노슈어)와 손잡고 해외 고객을 위한 금융 및 보증 지원 강화 협약을 전격 체결했다.

시노슈어는 자국 기업이 해외에 수출할 때 발생하는 대금 미회수 위험이나 환율 변동, 정치적 리스크 등을 보증해 주는 거대 국영 기관이다.
이 파트너십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CATL이 해외 완성차 업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발전사를 상대로 배터리를 팔 때, 시노슈어의 막강한 신용 보증을 지렛대 삼아 훨씬 유리한 대금 결제 조건과 저금리 자금 조달 창구를 함께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배터리 사시면 자금 조달부터 보증까지 싹 다 해결해 드립니다”
이러한 영업 방식은 수조 원의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비(CAPEX)가 들어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당장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으로 현금 흐름이 꽉 막힌 완성차 업체 입장을 생각해 보자.

A사가 그저 “수율 좋고 성능 뛰어난 배터리”를 들고 올 때, CATL은 “우리 배터리를 쓰면 결제도 천천히 해도 되고, 만약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도 중국 국영 보험사가 리스크를 떠안아 주겠다”며 ‘자금줄’까지 함께 들고 나타나는 격이다.
한국 독자들 입장에선 낯설 수 있지만, “같은 배터리라도 CATL은 대출과 보험까지 묶어서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는 사실은 글로벌 수주전에서 룰 자체를 기울어지게 만드는 엄청난 무기다.
영업 방식의 격차, K-배터리 3사의 깊어지는 고민
이 소식이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에게 치명적인 이유는 이것이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국가 대항전 성격의 금융 경쟁’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이 하이니켈 배터리의 수명을 늘리고 전고체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동안, CATL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자본과 금융 인프라를 무기 삼아 글로벌 시장의 점유율을 돈으로 쓸어 담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품질과 원가를 모두 따지지만, 수조 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에서 금융 리스크를 통째로 덜어주는 패키지 딜 앞에서는 기술력의 격차마저 희석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배터리 굴기의 진짜 무서움은 연구소가 아니라, 든든한 금고를 열어젖힌 그들의 치밀한 영업망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