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여 년 전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의 906톤급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다시 한번 국제 지정학의 무대 위로 소환됐다.
북한과 밀착을 가속하고 있는 러시아 내무부 대표단이 평양에 전시된 이 함정을 직접 찾으면서다.
미국에게는 뼈아픈 굴욕의 상징인 이 배를 매개로, 북한과 러시아가 반미 연대의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5노트에 포위된 12노트의 비극
조선중앙통신은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러시아 내무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평양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념관은 북한이 6·25전쟁의 승리를 주장하며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야외 보통강변에는 미국으로부터 빼앗은 최대의 전리품인 푸에블로호가 정박해 있다.
미 해군의 공식 명부에 여전히 현역 함정으로 등록되어 있는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공해상에서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다 나포됐다.
당시 미군은 베트남전 수렁에 빠져 있었고, 무장이라곤 기관총 몇 정이 전부였던 이 첩보함은 속도전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최고 속도 12노트에 불과했던 푸에블로호는 55노트의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는 북한 어뢰정 4척과 구잠함의 포위망을 돌파할 능력이 물리적으로 없었다.

결국 승조원 1명이 사망하고 82명이 11개월 동안 억류되는 100여 년 만의 참담한 피랍 사건으로 이어졌다.
당시 존슨 미 행정부는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전개하며 무력시위에 나섰으나, 승조원 송환을 위해 북한의 영해 침범 주장을 마지못해 수용하는 굴욕 협상을 맺어야만 했다.
전리품 앞에서 웃은 러시아 방북단
나포 직후 원산항에 묶여 있던 이 함정은 199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현재의 평양 보통강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순한 억류 자산을 넘어, 체제 선전과 대미 항전의 가장 가시적인 상징물로 격상된 것이다.

약 5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러시아 최고위급 인사들이 굳이 이 배를 관람하는 일정을 소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촘촘한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가 북한과의 전략적 밀착을 과시하기 위해 가장 상징적인 장소를 택한 셈이다.
과거 냉전 시절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받던 북한이 이제는 러시아 대표단을 향해 미국의 뼈아픈 실책을 증명하는 조형물을 자랑스럽게 안내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미국은 여전히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경우 협상 테이블의 이색 카드로 등장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