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묵은 관행 깨지나”… 한국 사회 뒤흔들 지각변동에 ‘시선 집중’

주4.5일제·정년연장 급부상
21년 만의 노동지형 변화
비용 부담과 생산성 과제

최근 정부가 주4.5일제와 정년연장을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립하는 가운데, 주5일제가 도입된 지 21년 만에 노동 시장에 큰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

주4.5일제·정년연장 결합론

8일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임금근로자 연평균 노동시간은 1천904시간으로 OECD 평균 1천719시간보다 185시간 길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요 31개국의 시간주권을 비교한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높은 반면 가족시간은 하위권으로 집계됐다.

AI 확산으로 생산성 혁신이 강조되는 가운데, 장시간 노동이 삶의 질과 경제 활력을 동시에 저해한다는 지적이 주4.5일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현실은 정년연장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2030년 25%, 2050년 4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되는 고령화 추세 속에서 노동력 축소와 연금·복지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는 구조적 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년연장과 주4.5일제의 결합은 노동자들이 적게 일하면서도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일자리를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성을 높이는 지속가능한 고용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부작용 경고와 비용의 벽

이러한 결합 방안이 유력하게 떠오르는 가운데, 2016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늘렸을 때의 역효과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과 김대일 서울대 교수의 최근 공동연구는 임금체계와 고용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리면 청년 채용 위축, 조기퇴직 확대, 이중구조 심화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부담은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정년을 연장할 경우 5년 뒤 60~64세 고령 근로자 고용 비용이 30조 2천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중소기업이 자동화나 해외 이전 여력이 제한적이라며 “인력난이 더 깊어져 산업 전반에 손실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추진과 여론의 온도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정부는 속도전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기간 주4.5일제 추진과 평균 노동시간을 OECD 이하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임금 삭감 없는 주4.5일제도 가능하다고 밝히며 정년연장 관련 사회적 대화와 입법 추진, 시범사업을 “가능한 곳부터” 시작하겠다고 했다.

정부의 강한 의지에 발맞춰 노동계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정년임금 인상과 함께 정년연장·주4.5일제를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진행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지난 26일 총파업을 결의하며 동일 요구를 내걸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최근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정년 65세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주4.5일제 시범을 과감히 시작해 내년을 근로시간 단축의 첫해로 만들자”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여론은 변화에 우호적이되 조건이 뚜렷하다. 한국리서치가 2월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61%가 주4.5일제 도입에 찬성했다. 동시에 60%는 근무시간이 줄어도 급여는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인건비와 생산성, 고령화사회를 둘러싼 이해가 첨예한 만큼, 제도 설계의 정밀함이 향후 논의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