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다 추방해” 쫓아내더니…한국인 없으면 안되는 상황에 미국 ‘초비상’

한국인 기술자 단속 후 미국, 추방 대신 자진출국 고심
공장 지연 우려에 숙련 인력 필요성 백악관도 인정
비자 제도 허점 드러나 새 카테고리 신설 논의

한국인 기술자 수백 명이 미국 배터리 공장에서 단속돼 한꺼번에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자, 미국 정부가 뒤늦게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

단속 당시만 해도 “불법 체류자 추방”이라는 단호한 표현이 앞섰지만, 정작 공사 일정 차질과 산업적 후폭풍이 불거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금 미국은 ‘추방’과 ‘자진출국’ 사이에서 단어 하나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재입국 금지 여부가 달린 중대한 문제다.

추방이냐 자진출국이냐…표현 하나에 갈린 운명

자진출국은 당사자가 비용을 부담하고 정해진 기한 안에 스스로 나가는 방식이다. 이 경우 추방 기록이 남지 않아 훗날 다시 미국을 찾을 때 입국 금지 규정을 피할 수 있다.

반면 추방 명령을 받으면 강제퇴거 기록이 남고,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동안 미국 땅을 밟지 못한다. 미국이 “추방”이라는 표현을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에 발이 묶인 인력은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배터리 공장 설비 구축에 꼭 필요한 고숙련 기술자들이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함께 짓는 조지아주 공장은 올해 안에 설비를 완공하고 내년부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 노동자만으로는 설비 이해도가 부족해 속도를 내기 어렵다.

결국 한국에서 투입된 기술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고, 이들이 빠지자 공장 가동이 최소 몇 달은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백악관이 서둘러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속 직후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가 언급된 것은, 미국 역시 숙련 노동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자 제도 허점 드러낸 단속…새 카테고리 신설 불가피

실제로 미국은 배터리뿐 아니라 조선과 방위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술 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해군력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조선업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려면 한국 숙련공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다. 현행 비자 체계에는 단기 고숙련 설치·시운전 인력을 위한 명확한 통로가 없다. 회의나 계약 협상을 위한 B-1 비자, 혹은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나 파견 직원용 L-1 비자 어디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대규모 단속으로 비화한 이유도 그 허점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양국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 신설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법 집행 문제가 아니다. 산업 정책, 공급망 안정, 양국 간 협력 관계까지 얽혀 있는 복합적 사안이다. 한국은 기술자들의 재입국 길을 지켜내려 하고, 미국은 법 집행의 원칙과 산업적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는 그만큼 무겁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향후 협상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지, 두 나라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