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전기차 생산 기반 확충에 집중 투자해온 전략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마저 ‘역내 생산 우대’ 정책을 강화하면서, 국내에서 생산해 세계로 수출하는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역내 생산 비율 70% 이상’ 기준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 시행 시점은 미정이나, 이는 현대차·기아가 2014년 이후 쌓아온 유럽 시장 91만 6천대 판매 성과를 직격할 수 있는 변수다.
두 회사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일부 모델을 생산하지만, 아이오닉5·6·9, EV3·5·9, PV5 등 주력 전기차 대부분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해왔다.
유럽 ‘중국 견제’ 칼날, 한국에도 적중

EU가 역내 생산 기준을 꺼내 든 배경은 중국 전기차의 급부상이다.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19년 0.5%에서 2024년 11월 12.8%로 확대됐고, BYD는 2025년에만 8만 7,657대를 판매하며 전년 대비 268.6% 급증했다.
EU는 2024년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효과가 미미하자, 이번엔 ‘생산지’ 자체를 제한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 규제가 중국뿐 아니라 한국산 전기차도 타격한다는 점이다.
기아 EV3는 2025년 유럽에서 6만 5,200여대가 팔려 전체 전기차 판매 9위에 올랐지만, 생산량 9만 4,652대 중 7만 3,788대가 한국 공장에서 만들어져 수출됐다.

만약 EU가 현지 생산 차량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이들 모델의 가격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참사’ 재연 우려… 울산 공장 12차례 가동 중단
현대차·기아는 이미 미국 시장에서 혹독한 경험을 겪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북미 생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2025년 대미 전기차 수출은 전년 대비 86.8% 급감했다.
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는 5만 5,825대에서 3만 4,164대로 38.8% 줄었다.
생산 현장의 충격은 더 직접적이었다. 아이오닉5와 코나 일렉트릭을 만드는 울산 1공장 12라인은 2025년 한 해 동안 총 12차례 가동을 멈췄다.

물량이 없으니 라인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여기에 EU마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기아의 광명·화성 이보(EVO) 플랜트도 유사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2조원 투자 ‘타이밍 미스’… 내수 22만대로는 역부족
현대차는 올해(2026년) 1분기부터 울산에 연 2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 ‘울산 EV’를 가동한다. 약 2조 원이 투입된 이 공장은 국내 전기차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설계됐다.
기아 역시 광명·화성 공장에 전기차 전용 라인을 대거 구축했다. 그런데 이 투자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미국과 EU가 동시에 ‘현지 생산’ 압박을 강화하면서, 투자 타이밍이 어긋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내수 전환도 한계가 명확하다. 연 22만 대 규모의 시장에서 중국산 점유율이 34%(2025년)까지 치솟으며 국산 비중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산 전기차 점유율은 2022년 75%에서 2025년 57.2%로 급락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7월 세법 개정안을 통해 국내생산촉진세제(한국판 IRA) 도입을 검토 중이나, 단기 효과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현대차·기아는 현지 생산 확대와 국내 공장 효율화라는 양면 전략을 동시에 가동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