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 왕실 건물, 일본 떠나 귀향
관월당, 왕실 사당급 위계 지닌 건축 유산
한일 협력으로 되찾은 역사, 책임은 지금부터

100년 전, 조선 왕실의 그림자가 일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그 흔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관월당. 이름만으로도 달을 품은 풍경이 떠오르는 이 건물은, 목재와 기와로 지어진 전통 건축물 그 이상이다. 그 안에는 시간 속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상처,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기다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0년 떠돌다 돌아오다… 조선 왕실 건물 ‘관월당’의 귀향
1920년대 일제강점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선 왕실과 관련된 건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인 스기노 기세이에게 넘어간다.
일각에선 왕실이 재정난을 겪으며 담보로 잡힌 건물이 식산은행을 통해 민간 자본에 흘러갔다고 본다.

스기노는 이후 이 건물을 가마쿠라의 고토쿠인에 기증했고, 관월당은 일본 국보급 대불 뒤편, 번잡한 세속으로부터 떨어진 그늘진 곳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고요하지만 쓸쓸하게, 그렇게 100년이었다.
귀환은 순탄치 않았다. 2010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일본 불교계와 협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다시 물꼬를 튼 건 2019년.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고토쿠인 측과 접촉하면서부터였다.
수년간의 교섭과 준비 끝에, 건물은 해체되어 부재 하나하나 포장되었고, 마침내 조국의 흙을 밟게 됐다. 해외에 있던 한국 전통건축물이 ‘전체’ 단위로 돌아온 건 처음이다.
100년 만의 귀향, 진심으로 이어진 한일 협력의 결과

이 귀환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협력의 방식에 있다. 고토쿠인의 사토 다카오 주지는 해체와 운송 비용을 자비로 부담했고, 한국 내 적절한 보존을 위해 재단에 기부까지 약속했다.
문화재를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지켜나가야 할 가치로 바라본 이번 접근은, 한일 양국 사이에서 보기 드문 모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관월당의 건축 양식도 주목할 만하다.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구조.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 왕족 중에서도 대군급 이상의 위계를 보여주는 사당 건물로 평가된다.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이 건물이 경복궁 내 내불당과 연관됐을 가능성도 제기한 바 있다. 아직 정확한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궁궐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 상징성은 더욱 깊어진다.

돌아온 관월당은 더 이상 하나의 문화재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일이자, 무너졌던 자존을 다시 일으키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귀향은, 오랫동안 제자리를 기다려온 또 다른 유산들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처럼 늦게나마 되찾은 한 조각의 기억이, 더 많은 유산을 향한 책임 있는 관심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