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무부 韓 기업 제재 이유… “너희 기술, 북한 생화학 공장 ‘마지막 퍼즐'”
‘화학무기 괴물’ 북한, 비축량 5천 톤… 韓 장비는 대량 생산 기폭제
20년 이어진 美 ‘원천 봉쇄’… “레시피 있어도 밥솥 못 사게 막는다”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얼굴에 무언가가 발린 채 고통 속에 숨졌다. 사인은 신경작용제 ‘VX’. 단 한 방울로 성인 수십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최악의 화학무기였다.
최근 미 국무부의 ‘제이에스 리서치’ 제재는 ‘VX의 악몽’과 맞닿아 있다. 표면적 이유는 시리아 물자 이전이나, 이면에는 시리아와 군사 기술을 공유하는 ‘북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미국은 한국 기업이 만든 정밀 장비가 북한의 노후화된 생화학 무기 생산 라인을 최신식으로 바꿔줄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은 이미 ‘화학무기 공장’… 한국산 장비가 ‘날개’ 달아준다
미국이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북한이 보유한 막대한 생화학 무기 능력 때문이다. 국방백서와 정보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2,500톤에서 최대 5,000톤에 달하는 화학무기를 비축하고 있다.

이는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 규모다. 보유 종류만 해도 VX, 사린가스, 탄저균, 천연두 등 13종이 넘는다.
문제는 ‘생산 설비’다. 북한은 이미 1980년대부터 독자적인 화학무기 제조 기술(레시피)을 확보했지만, 이를 대량 생산하고 보관할 ‘하드웨어’는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려왔다.
정밀한 온도 제어가 필요한 배양기나, 화학 물질의 부식을 견디는 특수 합금 반응기는 북한의 낙후된 공업력으로는 자체 조달이 어렵다.
이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 기업들의 장비다. 국내 중소기업이 만드는 바이오 실험 장비나 반도체용 화학 처리 기계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를 자랑한다.

미국 정보 당국은 이 장비들이 제3국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수작업 수준인 북한의 생화학 무기 공정이 ‘자동화 대량 생산 체제’로 진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레시피는 못 뺏어도 밥솥은 뺏는다”… 미국의 집요한 차단 역사
이번 제재의 근거가 된 ‘이란·북한·시리아 비확산법(INKSNA)’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집요한 ‘고사 작전’의 산물이다.
과거 미국은 핵무기나 미사일 완제품을 막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전략을 바꿨다.
테러지원국들이 무기 제조법은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와 ‘부품’의 유입을 원천 봉쇄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를 ‘공급망 통제’ 전략이라 부른다.
특히 ‘이중 용도(Dual-use)’ 물품에 대한 통제는 이 전략의 핵심이다. 평범한 비료 공장 설비가 폭약 제조 시설이 되고, 백신 제조용 동결건조기가 생물학 무기 보관소가 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전 세계 기업들을 감시하며, 의도와 상관없이 이 ‘죽음의 공급망’에 연루된 기업에는 가차 없이 제재의 칼날을 휘둘러왔다.
시리아는 북한의 ‘테스트 베드’… 연결고리 끊어라
시리아·북한 관계가 이번 제재의 핵심이다. 양국은 수십 년간 미사일·화학무기 기술을 공유한 ‘혈맹’이다. 정보 당국은 북한이 시리아 내전을 무기 ‘테스트 베드’로 활용했다고 의심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시리아로 보낸 물자는 사실상 북한 무기 개발을 돕는 것과 같다는 게 미국의 논리다. 시리아행 장비로 만든 데이터나 샘플이 평양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조치는 국내 기업들에게 보다 철저한 수출 통제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국산 장비가 의도치 않게 안보 위협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년 만에 단행된 이번 제재는 높아진 한국의 산업 위상에 걸맞은 엄격한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가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