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 전, 산에서 나무하다가”…대한민국 운명을 바꾼 스무 살 청년 이야기

1968년 청년 우성제, 북한 공비와 마주쳐
신속한 신고로 청와대 앞 침투 저지
57년간 이어진 우정과 국가를 지킨 용기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출처: 뉴스1

한겨울, 나무하던 청년이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1968년 1월 19일, 경기 파주시 삼봉산. 스무 살의 청년 우성제 씨는 형들과 함께 낙엽을 긁고 있었다. 눈 덮인 산속, 평소처럼 평화로운 하루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8촌 형이 산 위에서 손짓을 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간 우 씨는 군복을 입은 낯선 이들과 마주했다. 군인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들고 있는 무기는 AK 소총, 권총, 수류탄. 게다가 계급도 들쭉날쭉했다.

그 순간 우 씨는 직감했다. “이건 진짜다.” 평범한 하루는 그렇게, 청와대를 노리던 북한 무장공비 31명과의 첫 접촉으로 변해버렸다.

“신고하면 집안 없앤다” 협박에도 즉각 신고

무장한 공작원들은 우 씨 형제를 산 정상에 있는 ‘본부’로 끌고 가려 했다. 우 씨는 “나무를 해 팔아야 양식을 산다”며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결국 낫까지 빼앗긴 채 억지로 따라갔다.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출처: 연합뉴스

공비들은 신상 정보를 캐물었고, 대한민국의 현실과 북한의 체제를 비교하며 회유했다. 심지어 공산당 입당원서와 서약서까지 내밀었다. 하지만 우 씨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집에 와서 따뜻한 국이라도 드시라”며 침착하게 응수했다.

그날 저녁, 공비들은 형제들에게 일본제 손목시계를 건네며 “6개월 후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경고까지 덧붙였다. “신고하면 집안 전체를 없애버리겠다.” 하지만 형제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공비들과 헤어진 직후, 곧장 파출소로 향했다. 신고는 신속히 접수됐고, 군경은 즉각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한 공비…결정적 신고로 막았다

신고 이후 불과 이틀 뒤, 공비들은 청와대 500m 앞 자하문 고개까지 침투했다. 그러나 우 씨 형제 덕분에 대응에 나선 군경과의 교전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공비는 현장에서 사살됐다.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출처: 연합뉴스

그 가운데 유일하게 생포된 인물이 바로 김신조였다. 이후 김신조는 귀순해 목사가 되었고, 전국을 돌며 안보 강연을 이어갔다.

우 씨와 김신조는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왔다. 형제처럼 지낸 두 사람은 1997년 김신조 목사의 안수식에도 함께했다. 김신조는 생전 “우성제 형제가 대한민국을 살렸다”고 말하곤 했다.

한편,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장례식장에 ‘청와대 습격사건’ 주역 고(故) 김신조 목사의 빈소가 마련됐다. 조용히 빈소를 찾은 우성제 씨의 모습은 57년 전 사건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켰다.

국가의 역사가 바뀔 뻔한 그날, 그 시작점은 총도 계급장도 없던 나무꾼의 결단이었다. 그 용기는 지금도 여전히 강한 울림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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