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 업무 수행 중인 택배기사들
아파트 출입료로 갑질 논란
불평등한 권력구조 사회문제로

서비스 노동자를 향한 아파트 갑질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택배기사들에게 아파트 출입 비용을 요구한 사건부터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단체 사직한 사례까지, 입주민과 노동자 간 권력 불균형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 순천의 사례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비용을 전가하는 ‘갑질’의 전형으로 지적되며 사회적 분노를 일으켰다.
택배기사 향한 ‘이용요금’ 요구
19일 순천시에 따르면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 단지가 택배 기사들에게 공동 현관과 승강기 이용요금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부터 공동 현관문 카드 보증금 5만 원과 연간 이용료 5만 원, 총 10만 원을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아파트 측은 순천시와의 면담에서 “세대 보안과 엘리베이터 이용 불편, 시설물 파손 우려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일부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이 비용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되자 “집 대문까지 배달을 원하면서 통행세를 받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아파트 측은 거센 여론에 밀려 비용 징수 방침을 철회했으며, 순천시는 지역 이미지 훼손과 택배 기사들의 고충을 감안해 관내 모든 아파트에 공문을 보내 이용료 징수 중단을 권고했다.
“더 이상 못 참겠다” 관리직원 집단 사직

이번 순천 아파트의 택배기사 통행료 논란은 최근 들어 빈번해진 주거공간 내 갑질 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지난 7월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는 관리사무소 직원 9명 전원이 일부 동대표의 갑질을 이유로 단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엘리베이터에 게시한 글을 통해 “부당한 책임 전가, 언어폭력, 모욕적 발언, 비상식적 업무지시” 등을 사직 이유로 제시했다.
직원들은 휴가 일정이 동대표 회의를 통해 반려되고, 명절 수당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등 1년 가까이 인격 모독과 폭언이 지속되어 왔다고 호소했다.

일부 직원은 장기간 스트레스로 심장 두근거림과 이명 증상까지 겪으며 병원 치료를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내 집’에서 비롯된 갑질의 구조적 원인
전문가들은 이러한 아파트 갑질 현상이 우연이 아닌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일부 입주민들의 인식이다. ‘소유자’라는 특권의식이 과도하게 행사되면서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노동자에게 과도한 책임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권력 불균형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비원, 관리인, 택배기사 등 아파트 서비스 인력은 대부분 단기 계약이나 용역회사 소속으로 고용이 불안정하며, 계약 갱신이나 해고 결정권이 입주민에게 있어 부당한 요구에도 저항하기 어렵다.
법적·제도적 보호 장치의 미흡함도 이런 갑질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아파트 내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대상 부당 지시나 폭언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 규정이 부족하고, 갑질 신고와 분쟁 해결이 결국 같은 입주민 결정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결국 아파트 갑질 문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법적 보호 강화와 함께 ‘내 집’에서 비롯된 특권의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