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을 대하는 외교의 급과 격을 철저히 분리하는 이른바 ‘이중 구조 외교’를 노골화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향해서는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 고강도 비난과 적대감을 쏟아내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언급을 차단하며 투명인간 취급하는 전략적 무시 전술을 가동하고 있다.
한미는 ‘위원장’이 때리고 일본은 ‘동생’이 자른다
가장 극명한 대조는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나타난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한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미국을 체제 안보를 위협하는 군사적 대치 상대로 규정하며 날 선 메시지를 직접 던졌다.

그러나 체제 위협에 대해 핏대를 세운 그 연설문 어디에도 일본에 대한 비판이나 언급은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사 배치에서도 일본 패싱 기조는 뚜렷하다. 새로 구성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는 중국통인 김성남 위원장과 경제통인 김덕훈 부위원장 등 9명으로 채워졌으나, 그 안에 대일(對日) 외교 전문가의 자리는 없었다.
일본 외무성 동북아시아국에 북한 전담 인력만 15명이 배치되어 있고,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직접 김정은 위원장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개최를 호소하는 것과는 철저히 대비되는 풍경이다.
북한이 일본을 완벽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식이 달랐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미를 타격하던 날, 일본을 향한 메시지는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김 부부장은 “일본이 원한다고 실현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납북자 문제를 의제로 삼으려는 일본 총리를 만날 의사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는 일본 총리의 애타는 구애를 북한 서열 2위의 ‘개인적 담화’ 수준으로 격하시켜 일본의 외교적 굴욕감을 극대화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일본의 ‘짝사랑’이 한국 외교에 던지는 위협
단순히 북한이 일본을 기피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이중 구조 외교는 굳건해 보이는 한미일 3각 공조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찌르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 납북자 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국내 정치 의제다.

북한은 납북자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못 박으면서도, 대일 창구를 완전히 폐쇄하지는 않은 채 일본의 애간장을 태우며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갈라치기 전술은 한반도 안보 지형에 불편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에 대응해 강경한 제재와 훈련 압박을 이어갈 때, 일본은 자국민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독자적인 대화 채널을 모색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북한은 바로 이 지점을 노려 동맹의 일치된 목소리에 파열음을 내고 한국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 하는 것이다.

현재 일본 내에서도 성과 없는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존재하며, 다자 외교의 틀 안에서 북미 대화가 선행되어야 북일 소통도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총리가 매달리고 최고존엄의 동생이 차갑게 쳐내는 기형적인 짝사랑 외교가 계속되는 한, 한국은 무력 도발뿐만 아니라 동맹을 향한 북한의 교활한 심리전까지 막아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