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과 치솟는 물가로 인해 서민들의 경제적 한숨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고단한 현실 속에서 팍팍한 살림살이를 견뎌내고 있는 중장년층 사이에서 과거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 국가 경제의 기틀을 다진 영웅들의 이야기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서사를 자랑하는 것은 1967년 이국땅 베트남 정글에서 쓰인 해병대 청룡부대의 짜빈동 전투 신화다.
1개 중대가 1개 연대를 박살 낸 전설의 밤

짜빈동 전투는 1967년 2월 14일 야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베트남 꽝응아이성 짜빈동 지역에서 벌어진 치열한 진지 방어전이다.
당시 고립된 진지를 지키던 해병대 청룡부대 제3대대 11중대 병력은 290여 명에 불과했으나, 어둠을 틈타 기습해 온 적은 정규군을 포함한 2400여 명 규모의 1개 연대급 병력이었다.
수적으로 무려 8배가 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한국 해병대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육박전까지 불사하며 처절한 혈투를 벌였다.
날이 밝은 뒤 확인된 전과는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적군 사살만 243명에 달한 반면 아군 전사자는 15명에 그치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당시 전투 현장을 취재한 유력 외신들은 앞다투어 한국 해병대의 초인적인 투혼을 타전하며 이를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신화적인 방어 전투로 극찬했다.
월급 몇만 원에 조국의 미래를 걸었던 아버지들

이 압도적인 승리의 이면에는 가난했던 조국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참전 용사들의 눈물겨운 희생이 짙게 깔려 있다.
당시 낯선 베트남 정글로 향했던 청년들이 쥐었던 돈은 불과 월 몇만 원 남짓한 쥐꼬리만 한 전투 수당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받은 달러를 고국으로 부지런히 송금하며 한 푼 두 푼 피와 땀을 모았다.
이렇게 송금된 귀중한 외화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중화학 공업 육성 등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쏘아 올리는 핵심적인 종잣돈으로 쓰였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경제 규모는 이름 모를 낯선 정글에서 젊음을 바친 아버지 세대의 핏값 위에서 피어난 결실인 셈이다.
팍팍한 오늘날 다시 부르는 청룡의 투혼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최근 대내외적인 악재로 인해 서민 경제는 또 다른 거센 풍랑에 직면해 있다.
가장의 어깨가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과거 짜빈동 진지에서 맨몸으로 수류탄을 던지며 진격을 막아냈던 아버지들의 투혼은 단순한 과거의 무용담을 넘어선다.
한 경제 전문가는 참전 용사들의 희생으로 다져진 국가적 저력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기에 한국 경제가 숱한 위기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한파 속에서 절대 뚫리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적의 대공세를 막아낸 짜빈동의 붉은 밤이, 현재의 팍팍한 하루를 견뎌내는 우리에게 묵직하고 뜨거운 울림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