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모은 ‘노후자금’인데 “못 준다”…수만명 ‘날벼락’, ‘이것’ 하나 확인 안 해서

8689억 원 쌓인 국민연금, 절반이 노령연금 미수령
5년 지나면 ‘내 돈’도 사라지는 제도적 허점
이젠 국민이 아닌 국가가 먼저 찾아줘야 할 때

국민의 노후를 지켜주겠다던 제도가 정작 국민 손에 닿지 못한 채 쌓여가고 있다.

최근 5년 반 동안 청구되지 않은 연금이 9만8000건, 금액으로는 8689억 원에 달한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노령연금이다. 한평생 일한 대가가, 단지 제때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내 돈인데 못 받는다” 국민연금, 시효 지나면 사라지는 권리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대부분은 제도와 절차를 몰라서, 혹은 귀찮아서 청구하지 않은 경우다.

국민연금공단은 수급권이 생기기 석 달 전부터 안내 문자를 보내고, 우편도 보내고, 마지막까지 다섯 단계로 알린다. 그럼에도 연금 수령을 놓치는 사람이 줄지 않는다.

법으로 정해진 수령 기한이 지나면 그 돈은 더 이상 ‘내 돈’이 아니다. 노령연금과 사망급여는 5년, 반환일시금은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시효가 끝나면 돌려받을 수 없다.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시효가 끝난 미수령 건이 1만 건이 넘는다. 금액으로는 수십억 원이다.

통보를 받지 못한 유족이 많고, 본인조차 자격이 생긴 줄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금은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국민’이 자동으로 챙겨주는 제도가 아니라, 스스로 청구해야 작동하는 제도다.

문제는 정보 접근의 격차다. 고령층일수록 안내문을 읽지 못하거나 전산 접근이 어렵다. 문자로 안내가 와도 스팸으로 오인하거나, 우편물을 놓치면 그걸로 끝이다.

‘몰라서 못 받는 돈’이 ‘나라에 남는 돈’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빅데이터 기반으로 수급자 정보를 분석하고, 지자체와 협력해 직접 안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아서 찾아가라’는 연금제도, 이제는 국가가 먼저 나서야 할 때

실제로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망자 유족 명단과 연금 정보를 연계해 자동 안내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니다. 사회보장제도의 뿌리이자, 국민이 평생 납부한 노동의 증거다.

그만큼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시대에 맞는가에 대한 물음이 남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국가의 세심한 손길이 더 필요하다.

지금의 미수령 연금은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누군가는 몇십 년 일하고도 받을 돈을 놓치고, 누군가는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세상을 떠난다.

공단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민이 직접 챙기기 어렵다면, 국가가 먼저 다가가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