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쇼핑 장바구니가 달라지고 있다. 명동 화장품 매장이나 대형 마트의 과자 코너를 돌던 이들이 최근 서울 시내 전통시장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들의 목적지는 화려한 카페나 식당이 아니라 다름 아닌 동네 방앗간이다. 소주병을 닮은 투명한 유리병에 갓 짜낸 참기름과 들기름을 담아가는 것이 새로운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다.
골목길에 퍼지는 고소한 향기에 이끌려 방앗간을 찾은 관광객들은 하루에도 수백 명에 달한다.
내수 소비 침체로 활기를 잃어가던 전통시장에 외국인들이 북적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들기름 인기가 높아지며 가격마저 덩달아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농담마저 나온다.
공장 기성품과 다른 ‘날것의 체험’

관광객들이 굳이 낡은 방앗간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즉석 압착’이라는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대다수 일본 소비자는 마트 진열대에 놓인 공장 생산 기름에 익숙하다.
반면 한국의 전통시장 기름집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참깨나 들깨를 볶고 압착기에 넣어 기름을 짜낸다. 눈앞에서 원물이 액체로 변하고, 병을 여는 순간 진하게 퍼지는 고소한 향은 공장제 기성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감각을 제공한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한국인의 일상적인 식문화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다는 점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탔다.
X와 인스타그램 등에는 갓 짜낸 기름의 온도와 향기를 찬양하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매끄럽게 포장된 대량 생산 제품보다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로컬 콘텐츠에 지갑을 여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 방앗간은 이러한 체험형 관광 수요를 정확히 채워주는 공간으로 재발견된 것이다.
영양제 취급받는 들기름의 경제학
체험적 요소뿐만 아니라 가격과 용량에서 오는 실질적인 이점도 인기를 뒷받침한다. 일본 시장에서 들기름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에서는 이른바 ‘エゴマ油(에고마오유)’로 불리며 100g 안팎의 작은 병에 담겨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경우가 많다.
보통 100g 기준 1,000~3,000엔 선으로, 한국보다 훨씬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다. 요리에 듬뿍 넣기보다는 건강을 위해 소량씩 아껴 먹는 영양제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이에 반해 한국 전통시장에서 판매되는 기름은 보통 300ml 이상의 넉넉한 용량을 자랑한다. 가격 역시 일본 현지의 프리미엄급 소용량 제품들과 비교하면 체감상 훨씬 저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질 좋은 기름을 대용량으로, 그것도 가장 신선한 상태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 관광객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화장품이나 대중문화 상품을 넘어 한 나라의 일상적 삶의 방식 자체가 훌륭한 수출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시장 골목의 기름집이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