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 들고 480억 따냈다…”세계 최고 기업” 만든 50년 피땀 어린 결실에 ‘감동’

HD현대, 모래사장에서 세계 첫 5천 척 신화
500원 지폐로 열린 길…한국 조선의 운명 바꿨다
친환경·고난도 기술 앞세워 새 도약 노린다

HD현대가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최초로 선박 인도 5,000척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한국 조선업의 초격차 기술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 잡은 지금과 달리, 50년 전 울산 미포만은 설비 하나 없는 황량한 모래사장에 불과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 창업자는 그 빈터를 바라보며 “이곳에 세계적인 조선소를 짓겠다”는 무모해 보이는 목표를 세웠고, 그 결단이 한국 조선 산업의 위대한 첫 항로가 됐다.

500원 지폐 한 장으로 열린 길…한국 조선의 운명이 바뀌다

문제는 막대한 건조 자금이었다. 일천한 산업 환경 탓에 해외 금융기관의 냉대가 이어지자 정 창업자는 영국으로 날아가 500원 지폐를 꺼내 들었다.

그는 지폐 속 거북선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미 300년 전 철갑선을 만든 민족”이라며 끈질기게 금융인들을 설득했다. 백 마디 설명보다 강력했던 지폐 한 장의 호소는 굳게 닫혀 있던 유럽 금융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다.

결국 현대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480억 원 규모의 차관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정 창업자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띄웠다.

1974년, 첫 초대형 유조선(VLCC)을 기한 내 인도하며 거둔 이 극적인 성공은 세계 시장이 비로소 한국 조선업을 주목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이후 한국 조선업은 단순한 물량 경쟁을 넘어 LNG 운반선과 고성능 함정 등 고난도 분야로 항로를 넓혔다.

수십 년을 운항해야 하는 선박의 특성상, 철저한 납기 준수와 정밀한 품질 관리는 ‘비싸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파트너’라는 독보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기반이 됐다. 이는 오늘날 한국 조선업을 지탱하는 핵심 경쟁력이기도 하다.

모래사장에서 5천 척까지…새로운 도약을 예고한 한국 조선업

현재 글로벌 시장은 중국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로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고난도 기술을 앞세운 ‘초격차 전략’으로 중심을 잃지 않고 있다.

친환경 규제 강화로 LNG, 암모니아 등 차세대 선박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은 한국에 또 다른 기회다. HD현대를 필두로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는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기술을 결합하며 미래 경쟁력을 다지고 있다.

이번 5,000척 달성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지난 50년간 한국 조선업이 쌓아온 기술과 신뢰의 총합이다. 인도된 선박을 일렬로 세우면 서울에서 도쿄를 잇는 거리보다 길다는 사실이 그 성취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모래사장의 기적으로 시작된 한국 조선업은 이제 급변하는 파고 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