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신용사면 발표로 논란
성실상환자들 상대적 박탈감
도덕적 해이 우려 목소리도

매달 성실하게 대출을 갚아온 시민들 사이에서 허탈감이 퍼지고 있다. 정부가 연체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신용사면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2020년 이후 발생한 5천만 원 이하 연체 채무를 올해 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연체 이력을 완전히 삭제해주는 ‘신용사면’을 다음 달 30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와 경기침체, 계엄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서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324만명 대상 파격적 혜택
이번 신용사면 대상자는 약 324만 명에 달한다. 올해 6월 말 기준, 이미 272만 명이 상환을 완료해 지원 대상이 되었고, 나머지 52만여 명도 연말까지 전액을 갚으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신용회복 지원을 받으면 연체 이력 정보가 금융기관 간 공유에서 제외되고, 신용평가사의 평가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통해 “성실상환자들이 금리와 대출 한도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과거 사례에서도 효과는 뚜렷했다. 지난해 신용회복 지원을 받은 개인의 신용평점은 평균 31점, 개인사업자는 무려 101점이 상승했다. 약 2만6천 명이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았고, 11만3천 명이 1금융권에서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전 2021년과 2024년 신용사면에서는 지원 대상이 ‘2천만 원 이하 연체자’였으나, 이번에는 기준 금액이 5천만 원으로 대폭 확대됐다. 당국은 “코로나19 피해 장기화와 고금리, 계엄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가 맞물린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성실상환자들 “상대적 박탈감” 호소
신용사면 정책이 시행되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상황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지난해 사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390만 원이 연체된 50대 프리랜서는 전액 상환 후에도 연체 기록 때문에 시중은행 대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신용회복 지원을 받아 연체 기록이 삭제된 뒤에는 금리가 낮은 대출을 새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혜택을 바라보는 성실상환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이자를 갚아온 이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 우려도 제기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신용사면이 잦아지면 채무자들이 대출을 제때 갚지 않는 관행이 굳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사면 정책이 반복되면 ‘어차피 나중에 사면해 줄 텐데’라는 생각으로 성실 상환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며 “이는 결국 전체적인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과거 신용사면 이후 카드론 잔액 증가와 금융기관 연체율 상승 현상이 관찰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연체 경험이 있는 차주를 선별하기 어려워지면서 금융사의 부실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 전문가는 “신용점수 자체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며 “연체 기록이 반복적으로 삭제되면 금융사가 신용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채무를 성실히 상환한 분들에게 재기 기회를 주려는 취지”라며 “신중한 관리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실상환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제도의 공정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