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던 시나리오가 현실로 “코로나 이후 최악”…적신호에 ‘이제 어쩌나’

한은, 계엄 후 62조 RP 투입
금리 동결로 환율 안정 도모
인플레·자본 이탈 우려 교차

“계엄 사태가 이렇게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줄 몰랐네.”, “RP 매입이 이렇게 많아지면 물가는 안 오르려나 걱정이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부터 현재까지,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공급한 자금 규모가 60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작년 12월에만 47조6천억원을 쏟아부은 데 이어 올해 1월 초까지 15조원을 추가로 투입해, 계엄 이후 누적액이 약 62조6천억원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던 2020년 한 해 동안의 RP 매입 총액(42조3천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RP 매입 총력전, 얼어붙은 금융시장 녹인다

RP 매입은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을 조건부로 사들여 시중에 돈을 풀고, 이후 약정된 시점에 그 채권을 다시 매도해 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계엄 사태로 인해 금융시장의 심리가 급랭할 조짐이 보이자, 한국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공격적으로 늘려 시장의 추가 경색을 막으려 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시중에 유동성이 충분치 않으면 은행들이 대출이나 투자를 꺼리게 되고, 이는 다시 소비·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16일 발표된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에도 이 같은 대규모 유동성 확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시중에 돈이 대거 풀린 가운데 금리마저 성급히 내리면, 원/달러 환율 상승이나 해외 자본 이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행은 일단 금리를 ‘동결 기조’로 유지하면서, 계엄 지속 여부와 대외 금융 변수를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계엄 속 경제 불확실성… 한은의 다음 선택은?

다만 계엄 상황이 장기화되어 시장 불안이 심화될 경우, 한국은행이 RP를 추가로 매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이 경우 은행·기업의 자금 경색을 완화하는 효과는 클 수 있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이나 환율 변동성 확대가 뒤따를 여지도 남아 있다.

결국 한국은행은 “필요한 만큼 적시에 공급하되, 환율과 물가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는 복합 과제를 떠안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계엄이 조기에 해소된다면 추가 조치 없이도 RP 매입 속도를 점진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국내외 정치·금융 환경이 계속 불안정하다면 유동성 공급 확대와 금리 정책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시장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과 자본 이탈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분위기로, 당분간 한국은행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