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강국’ 외치더니 “3년 전과 다를 바가 없네”… 되풀이된 사태에 국민들 ‘분통’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 행정전산망 마비 초래
과거 카카오 사태와 닮은꼴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대한민국의 행정 전산망이 사실상 멈춰 서면서 국민 생활 전반에 심각한 혼란이 빚어졌다.

주민등록 업무는 물론 우정사업본부 금융 서비스, 각종 행정 처리까지 일제히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전산실 화재 한 번에 국가 행정이 무너진 현실은 정부가 그동안 외쳐온 ‘인공지능(AI) 3대 강국’이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며, 정작 자국의 전산 인프라 안전에는 허술했다는 비판을 키우고 있다.

반복되는 실수, 교훈 없는 대응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의 원인은 무정전 전원장치(UPS)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2년 10월 발생했던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와 동일한 양상이다.

당시 카카오는 메시지 송수신이 중단되며 전 국민이 불편을 겪었지만, 이후 시스템 전체 이중화를 통해 대응력을 강화했다.

카카오는 자체 조사를 통해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 미흡이 사태 장기화의 원인이었음을 밝히고, 안산에 전용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등 시스템 이중화 인프라를 확충했다.

ICT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카카오는 사고 이후 전력·냉각 설비에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데이터센터 삼중화까지 완료했다.

또한 소화 시스템도 개선해 밀폐된 전기 판넬에 개별 소화장치를 설치하고 예비 소화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정부가 유사한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간은 앞서가는데 정부는 뒤처져

카카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네이버와 같은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이상 탐지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들은 온도, 전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발열이나 전력 이상 신호를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한다.

해외에서도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AI 운영 자동화를 도입해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3년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구글 데이터센터에서 AI가 전력 계통 이상을 사전에 감지해 대규모 장애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반면 정부의 전산 인프라는 여전히 서버와 스토리지 중심의 수동 관리 체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올해까지 공공 정보시스템 9천여 개를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과제를 추진 중이었지만, 상당수 시스템은 이중화가 미흡한 상태였다. 이러한 기술적 격차는 결국 재난 대응 능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한 데이터센터 전문가는 “정부 전산은 국가 핵심 인프라인 만큼 민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며 “특히 UPS 배터리, 냉각 장치 같은 고위험 설비에는 AI 조기경보 체계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AI, 재난 대응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민간 기업과 정부 간의 이러한 기술 격차는 단순한 시스템 차이를 넘어 재난 대응 패러다임의 차이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AI가 모든 화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인적 대응 시간을 단축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조기경보 확률을 높이고 상황 전개를 빠르게 감지하는 AI는 재난 관리의 속도를 바꾸는 핵심 기술인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 직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카카오 사태 이후 3년이 지났음에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정부의 대응 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는 대전 본원 외 지역 분원에 데이터 백업 체계는 갖춰져 있지만, 이를 가동할 시스템이 부족해 행정 서비스 복구가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백업 시스템 구축을 넘어 AI 기반의 통합적 재난 대응 체계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화재는 ‘AI 강국’을 표방하기 전에 정부 시스템부터 AI 안전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민간의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예산과 조달 절차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