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경기침체 여파에 편의점도 ‘고개 숙여’
11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 역성장 기록
‘경기방어 업종’의 신화도 깨졌다

“점포를 늘려 매출을 키우는 시대는 끝났다.” 업계 관계자의 한마디가 국내 편의점 산업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며 ‘안전한 사업’이라는 평판을 얻었던 편의점 업계가 마침내 내수 부진의 파고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유통업 매출 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편의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했다.
2013년 2분기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기록된 분기 기준 역성장이다. 그동안 매 분기마다 5-10%의 성장률을 보여왔던 것과 비교하면 충격적인 결과다.
성장 신화의 종말

“장기화하는 소비 침체에 가장 방어적인 편의점마저 타격이 있다.” 조상훈·김태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편의점 산업이 구조적인 저성장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부진의 표면적 원인으로 업계는 지난 3월까지 지속된 추운 날씨와 경북 대형 산불 같은 돌발 변수를 꼽는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깊고 단단한 내수 침체가 편의점 업계마저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소비 심리를 더욱 빠르게 위축시켰다.

이는 2025년 1분기 주요 업체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GS25는 매출이 2.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34.6%나 급감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비슷한 상황으로, 매출은 3.2%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30.7% 감소했다.
매 분기 최소 5% 이상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던 이들 업체의 성장세가 반토막 난 가운데, 고물가와 고금리에 따른 비용 부담으로 수익성마저 큰 폭으로 악화됐다.
포화상태에 달한 시장
더욱 충격적인 것은 편의점 점포 수의 감소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5만4,852개로 전년보다 68개 줄었다. 편의점 산업이 시작된 1988년 이후 연간 기준 점포 수가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미니스톱과 합병한 세븐일레븐이 1,000개 이상의 점포를 줄인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편의점 성장 시대에 제동이 걸렸다는 상징적인 신호로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산업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까지 전년 대비 10%를 웃돌던 편의점 점포 증가율은 2019년부터 5% 수준으로 하락했고, 지난해에는 2~3%대까지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는 1% 미만으로 추정되며, 지난 3월에는 0.3%에 그쳐 월간으로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진협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편의점은 일반적으로 전통 유통업종 대비 높은 평가가치를 받아왔는데, 최근 성장률 둔화로 밸류에이션 격차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교훈과 미래 전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편의점 업계는 일본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편의점 시장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5만 개를 넘어서며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신규 출점의 한계 등 성장 제약 요인 속에서도 일본 편의점 업계는 다양한 혁신으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재팬은 앱 기반 30분 내 즉시 배송 서비스인 ‘7NOW’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드론과 배송로봇 등 첨단 물류기술을 도입해 고령층이나 외출이 어려운 고객층까지 공략하고 있다. 로손은 우버이츠 등과 협력해 전국 4,000여 점포에서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또한 미니스톱 등은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 기능을 결합한 융합형 점포를 도입해 신선식품과 가정식 수요까지 흡수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로손은 AI, VR, 핀테크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미래형 편의점’을 설계해 무인화 및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편의점 업계도 이제는 출점을 통한 양적 성장보다는 내실 경영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처럼 고강도 점포 효율화와 사업 재편을 통해 점포당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간 이어진 내수 침체 속에서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졌던 편의점마저 흔들리는 지금, 과연 이들이 일본처럼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