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은 거짓말·도둑질하는 민족?”… ‘왜곡’된 200년, 이제야 바로잡는다

유럽 한국학회 학술상 명칭 변경
헨드릭하멜상에서 AKSE상으로
200년 편견 극복위한 첫걸음
하멜
‘헨드릭하멜상’ 명칭 변경 / 출처 : 연합뉴스

“조선 사람은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경향이 강하다.”

17세기 한 네덜란드인이 남긴 이 기록이 200년 넘게 유럽인들의 한국인 인식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이제야 학계가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헨드릭하멜상의 종료, 새로운 시작

20일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유럽한국학회 총회에서 역사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기존 ‘헨드릭하멜상’의 명칭을 ‘AKSE상’으로 바꾸는 안건이 표결을 통해 최종 승인된 것이다.

유럽 출신 연구자들이 주도하는 이 한국학 모임은 2017년부터 영어를 포함한 유럽 언어로 작성된 한국학 관련 우수 논문과 출판물을 선정해 2년마다 시상해왔다.

하멜
‘헨드릭하멜상’ 명칭 변경 / 출처 : 연합뉴스

상의 명칭 변경은 하멜이 남긴 기록이 지닌 역사적 맥락과 그에 대한 재평가의 흐름을 반영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회계사 겸 서기로, 1653년 상선 스페르버르호를 타고 일본으로 향하던 중 조난을 당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13년간 조선에 억류되었고, 탈출 후 조선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기록이 바로 오늘날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문헌이다.

편견을 양산한 17세기의 기록

하멜의 보고서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의미를 지녔다. 유럽에 조선을 소개한 최초의 구체적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유럽에는 조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던 상황에서, 이 책은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멜
‘헨드릭하멜상’ 명칭 변경 / 출처 : 연합뉴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17회 이상 재출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으며 극동 아시아를 항해하는 서양 선박들에게는 필독서나 다름없었다. 조선 근해를 지나는 유럽 선박들이 이 책을 비치하고 항해 지침서로 활용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기록에 담긴 조선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었다. 하멜은 자신의 보고서에서 조선인을 거짓말쟁이이자 도둑으로 묘사했다.

13년간의 억류 생활에서 겪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판단이었지만, 이것이 조선에 대한 유일한 기록으로 읽히면서 조선인은 야만적이고 거칠다는 이미지를 굳혔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이은정 교수는 이런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9세기까지 하멜의 책을 읽은 유럽 뱃사람들이 조선 근처를 지나갈 때 무서워서 항해 속도를 높였다는 기록도 나온다”면서 “하멜은 기념할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봐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오리엔탈리즘 극복을 위한 노력

하멜
‘헨드릭하멜상’ 명칭 변경 / 출처 : 연합뉴스

학계 일각에서는 수년 전부터 헨드릭하멜상의 명칭 변경을 요구해왔다. 하멜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한 것 자체가 유럽이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편견어린 시각을 의미한다. 동양을 신비롭고 이국적이면서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이다.

하멜의 기록 역시 17세기 네덜란드인의 시각에서 조선을 관찰하고 평가한 것으로, 객관적 사실보다는 문화적 편견이 개입된 해석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번 명칭 변경은 유럽 한국학계가 이런 한계를 인정하고 보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한국을 연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비록 상징적 의미에 그치는 변화일 수 있지만, 200년간 지속된 편견을 극복하려는 첫걸음으로는 충분히 의미있는 결정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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