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필리핀 가사관리사들
체류불안과 저임금에 여전히 고통
정부 약속과 현실 사이 괴리

한국의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한 필리핀 돌봄 전문가들이 체류 불안과 저임금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이 사업이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약속과 다른 현실, 3년이 아닌 3개월 계약
이미애 제주대 학술연구교수가 12일 서울시의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체류 불안정성이었다.
정부는 당초 이들의 취업활동기간을 최대 36개월까지 보장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A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일괄적으로 1년 연장을 받았지만, B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경우 천차만별이었다. 3개월 연장을 받은 사람이 3명, 6개월이 10명, 1년이 14명으로 제각각이었다.
이 교수는 “서울시가 ‘근로자의 근무 태도 등을 평가해 계약기간을 설정한다’고 답변했다”며 “이들에 대한 3년 고용 보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시범사업 참여자 21명과 통역자 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런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을 믿고 찾아온 이들이 예상과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아동 돌봄 전문가가 반려동물까지 돌봐야
계약서상 아동 돌봄 전문가로 입국한 이들이지만, 실제로는 전문성과 거리가 먼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집 청소, 화장실 청소, 설거지, 쓰레기 처리는 물론 반려동물 돌봄까지 맡아야 했다. 심지어 고객의 친척 집까지 가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주 30시간 이상 근무를 보장받았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휴식 시간은 부족했고 업무 강도는 과도했다.
그 결과 숙박비 등을 제외한 실제 수령액은 90만원에서 130만원 사이에 그쳤다. 평균 118만원으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한 참여자는 “돌봄 전문가로 왔는데 청소부 일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정부 “문제없다” vs 현실 “문제투성이”
이런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관리 감독 체계의 부재에 있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협박이나 성추행 등 부당한 일이 발생해도 행정기관은 개입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중개업체들은 참여자들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업체들이 이들을 대등한 소통 상대가 아닌 일방적 통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교수는 해결책으로 “체류 안정성 보장, 노동권 강화, 양질의 돌봄 일자리 창출”을 제시했다. E-9 비자의 사업장 이동 제한 완화와 공정한 임금체계 구축, 실효성 있는 관리 감독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구 결과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즉각 반박했다. 노동부는 “가사관리사들은 주 30시간 미만으로 근무해도 주 30시간의 임금을 받고 있다”며 “업무 범위를 넘어선 요구가 있으면 업체를 통해 조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협박이나 성추행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2024년 9월부터 시작돼 현재 89명이 148가정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기 가정만 102곳에 달할 정도로 수요는 높지만, 정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우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