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자존심’인데 “중국서 몰려오자” 분노…시위대까지 등장한 상황에 ‘발칵’

파리 중심가에 첫 매장 연 중국 패션 브랜드 쉬인
“감히 파리 한복판에” 분노한 프랑스, 거리엔 찬반이 맞섰다
이상과 생존 사이, 현실을 택한 세대가 패션의 거울을 흔든다

파리의 심장부, 시청 맞은편 BHV 백화점 앞이 요즘 유난히 뜨겁다. 중국 초저가 패션 브랜드 쉬인(Shein)이 이곳에 첫 오프라인 상설 매장을 열자, 파리 시민들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매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프랑스 패션의 모욕”을 외치는 시위대가 한자리에 몰리며, 패션의 수도는 하루아침에 논쟁의 무대가 됐다. 단순한 유통 이슈가 아닌, 문화적 자존심과 글로벌 현실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건이었다.

“감히 파리 한복판에?”… 쉬인 매장에 흔들린 프랑스의 자존심

쉬인은 클릭 한 번으로 최신 트렌드를 살 수 있는 ‘패스트패션의 제왕’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환경 오염 논란이 따라붙는다.

프랑스 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이유로 쉬인을 비판하지만, 이번 반발은 도덕적 분노보다 “감히 파리의 중심을 차지하다니”라는 감정적 반응이 더 크다.

장인정신을 자랑하는 프랑스 패션계 입장에서 대량생산된 중국 옷이 백화점 한복판에 들어선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 이면에는 경제적 불안도 있다. 유럽은 최근 ‘전략적 자율성’을 내세우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 한다. 그런 가운데 쉬인이 프랑스 중심가에 매장을 연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자라나 H&M의 경쟁자로 여겨지던 쉬인이 이제는 ‘중국산 패션’의 대표로 자리 잡은 셈이다. 프랑스인들로서는 불편함을 넘어 불안함이 스민다.

그러나 다른 시선도 있다. 시위대의 고함을 뒤로한 채 줄을 서 있던 한 여성은 “요즘 중국산 옷 안 입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라고 말했다. 값싼 옷을 고르는 건 취향이 아니라 생계의 문제라는 의미였다.

패션의 수도 파리, 자존심과 생존 사이에서 마주한 불편한 진실

’지속 가능한 패션’과 ‘윤리적 소비’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의 지갑 사정 앞에서는 먼 이야기다. 젊은 세대에게 쉬인은 ‘빠르고 저렴한 트렌드’의 상징이며, 그들의 선택은 도덕보다 현실에 가깝다.

쉬인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어떤 옷을 입는가’보다 ‘누가 그 옷을 입을 수 있는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파리의 부티크 거리를 걷는 이들과 쉬인 매장 앞에 줄 서는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

쉬인의 파리 상륙은 프랑스 사회의 자화상이다. 문화적 자존심과 경제적 현실, 이상과 생존의 간극이 한 매장 앞에서 드러났다. 패션은 시대의 거울이라지만, 이번에는 그 거울 속에서 프랑스 자신이 불편한 얼굴을 마주했다.

이번 논쟁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지, 글로벌 소비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제 패션의 수도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