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싱크홀 사고 잇따라 발생 중
정부 추경 22억 투입했지만 한계 분명
국회예산정책처 “실효성 떨어진다” 지적

전국에서 대형 싱크홀(땅 꺼짐)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에 지반탐사 지원 예산을 반영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사용 중인 탐사 장비로는 최근 빈발하는 대형 공사장 주변 깊은 지하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6일 발표한 분석 보고서에서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책의 ‘허점’… 2m 탐지로 20m 깊이 싱크홀 예방?
정부는 이번 추경안에 지자체의 도로 지반탐사 지원을 위한 예산 13억6천만원과 국토안전관리원이 차량형 지반탐사 장비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 9억1천300만원 등 총 22억7천300만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이번에 구입 예정인 지표 투과 레이더(GPR·Ground Penetrating Radar)는 땅속에 레이더를 쏘아 내부 상태를 파악하는 장비로, 최대 탐지 깊이가 2m 안팎에 불과하다.

이 장비는 지하 3m 이내에 매설된 노후 상하수도관 누수를 감지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최근 발생하는 대형 싱크홀의 주요 원인인 깊은 굴착공사에 의한 지반 이상을 확인하기는 어렵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현재 도로 탐사용으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GPR은 기술적 한계가 명확하다”며 “지하철 건설 등 대규모 굴착 공사, 깊은 지하 구조물 건설, 깊은 곳에 매설된 간선 관로 문제로 인한 지반침하 위험은 지금의 차량형 GPR 기술로 사전에 감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달 발생한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과 지난해 8월 서대문구 연희동 싱크홀 사고 현장은 모두 사고 발생 3개월 전 차량형 탐사장비를 이용한 사전 탐사가 이루어졌으나, 어떠한 이상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도심 싱크홀 원인, 노후 관로만이 아니다
대도심에서 싱크홀이 발생하는 원인은 단순히 노후 상하수도관 문제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크게 다섯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째, 노후화된 상·하수도관 및 지하매설물의 누수로 인한 ‘세굴(洗掘)’ 현상이다. 관로에서 누수된 물이 주변 토사를 씻어내면서 지하에 빈 공간이 형성되고, 차량 하중 등 외부 압력이 가해질 때 지반이 무너지는 것이다.
둘째, 과도한 지하수 사용 및 지하수위 변화다. 지하수를 과도하게 끌어다 쓰면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지하수가 감당하던 압력을 땅이 직접 받게 되어 지반이 무너질 수 있다.
셋째, 잦은 지하공사와 지하공간 개발이다. 지하철, 터널, 지하주차장 등 다양한 지하공간 개발로 인해 지반이 약해지거나, 굴착공사 부실, 흙 다짐 불량 등이 싱크홀 발생을 촉진한다.

넷째, 지반 자체의 약함이다. 과거 하천 매립지나 저지대, 모래·자갈로 구성된 연약 지반 위에 도시가 형성된 경우 싱크홀 발생 위험이 높다. 서울의 경우 과거 한강 매립지 등 연약 지반이 많다.
다섯째, 집중호우나 장마 등 자연적 요인이다. 폭우나 장마로 인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고,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지반이 침식되어 싱크홀이 생길 수 있다.
실효성 있는 싱크홀 예방 대책은?
국토안전관리원은 현재 장비의 한계를 인지하고 최대 20m 깊이까지 탐지할 수 있는 ‘장심도(長深度) GPR 장비’ 도입을 검토했으나, 성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올해 초 도입이 무산됐다. 하지만 최근 대형 싱크홀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다시 장심도 GPR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대규모 지하 공사 전 정밀 지반 조사를 의무화하고 설계를 강화하는 한편, 공사 중에도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주기적으로 점검·관리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싱크홀 예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초음파, 레이더 등 첨단 지반 탐사 기술을 활용한 정기적인 지반 조사 및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또한 상·하수도관, 배수 시스템 등 노후된 지하 인프라의 정기 점검과 신속한 보수, 지하수의 적절한 관리, 그리고 건설공사 시 철저한 지반 조사 및 안전 기준 준수가 중요하다.

서울의 한 토목공학 전문가는 “싱크홀은 예방이 핵심인데, 현재 정부 대책은 부분적인 문제만 해결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과 함께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국회예산정책처는 “대형 지반침하 사고 발생에 따른 인명, 재산 피해가 현실화하고 나서야 이를 추경안에 편성한 점은 문제”라며 사후약방문식 대책의 한계를 지적했다.
올해 정부가 ‘건설 및 지하안전사업 관리’ 본예산으로 16억8천700만원을 편성했으나, 지하안전보다는 건설현장 부실시공 관리와 불법행위 근절 사업에 치중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시민들은 도로에 균열이나 움푹 패임 등 이상 징후가 보이면 즉시 관할 기관에 신고하고, 싱크홀 발생 시에는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가운데, 시민들의 관심과 주의도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