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8시간을 달린 CEO가 있다. 그러나 그 체험이 현장 노동자의 하루와 얼마나 닮아 있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3월 19일 오후 8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6시 30분까지 약 10시간에 걸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일대에서 새벽배송 현장 체험을 마쳤다고 쿠팡이 20일 밝혔다.
청문회 제안이 현실로…3개월 만에 성사

이번 체험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청문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염 의원이 로저스 대표에게 “배송 근로자의 노동 강도와 업무 환경을 직접 파악해 달라”며 심야 배송 동행을 제안했고, 로저스 대표가 즉각 수용하면서 약 3개월 만에 실행됐다.
두 사람은 성남 야탑 쿠팡로지스틱스(CLS) 배송캠프에서 안전교육과 상차 작업을 마친 뒤, 직고용 배송기사인 ‘쿠팡친구’와 함께 아파트·빌라·단독주택 지역을 누비며 각각 약 150건의 배송을 수행했다.
150건 vs 388건…수치로 드러난 간극

체험의 진정성을 두고 택배노조는 즉각 반박했다. 택배노조가 2025년 12월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퀵플렉스 택배노동자 689명의 일평균 배송 물량은 388건에 달한다. 로저스 대표와 염 의원이 각각 150건을 처리한 것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근무 환경 격차도 뚜렷하다. 체험단은 30분씩 두 차례 휴식을 가졌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전체 물량을 끝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쉴 수 없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건당 수수료는 800원이며, 30일 무휴 근무 기준 월 예상 수입은 약 300만 원에 불과하다.
유화 제스처인가, 실질 개선의 신호인가

유통업계는 이번 체험을 “정치권과의 관계 회복을 노린 유화적 행동”으로 해석한다. 청문회 이후 불거진 갈등을 봉합하려는 신뢰 회복용 이벤트라는 시각이다.
택배노조는 더 구체적인 조치를 요구했다. 2021년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에 쿠팡이 불참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집화·배송 외 업무에 별도 인력 투입과 수수료 삭감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간접고용·특수고용 형태의 퀵플렉스 노동자들은 현재 근로기준법 보호 밖에 놓여 있다.
로저스 대표는 체험 후 “고객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근로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안전하고 선진적인 업무 여건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쿠팡 측도 “배송현장 목소리를 적극 경청해 직원 근무여건과 건강권 강화에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10시간의 새벽을 함께 달린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하루 388건, 쉼 없이 달려야 하는 현장의 무게를 제도적으로 덜어내는 후속 조치가 없다면 이번 체험은 하나의 퍼포먼스로 기억될 수 있다. 업계와 노동계의 시선은 이미 ‘다음 행동’으로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