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자동차 시장의 침체가 길어지며 완성차 업계 전반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고금리와 고물가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한국 GM의 쉐보레 브랜드는 내수 시장에서 유독 힘겨운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 2월 쉐보레의 내수 판매는 전년 대비 37% 이상 급감하며 두 달 연속 1,000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시야를 북미 시장으로 돌리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한국 시장의 부진이 무색하게도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는 미국 본토에서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다.
현지 딜러들 사이에서는 “차량이 매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인이 정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수요가 이어지는 중이다.
“가성비의 끝판왕”… 미국인들이 한국산 SUV에 열광하는 이유

미국 시장에서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돌풍을 일으키는 비결은 철저한 실속에 있다. 현지 가격 2만 달러 초반부터 시작하는 파격적인 가격표를 달고서도 화려한 디자인과 11인치 대형 스크린 등 최신 사양을 아낌없이 담아냈다.
현지 전문가들은 “저렴한 차는 조잡하다는 편견을 완벽히 깬 모델”이라며 트랙스의 상품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3년 연속 국내 승용차 수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 2월 한 달간 총 판매량 3만 6천여 대 중 수출이 무려 3만 5천 대를 넘어서며 사실상 ‘수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형제 모델인 트레일블레이저 역시 사륜구동 옵션과 9단 변속기를 앞세워 북미 지역의 험로 주행 수요를 성공적으로 흡수하고 있다.
97%에 달하는 수출 의존도… 내수 실종이 부른 브랜드 딜레마

그러나 기록적인 수출 실적의 이면에는 내수 부재라는 뼈아픈 고민이 자리 잡고 있다. GM 한국사업장의 전체 판매 물량 중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 수준에 불과하다.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경제에 기여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도로 위에서는 쉐보레 차량을 구경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 기지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 ‘쉐보레를 사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는 점이 부진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에서 수출용 모델의 사양 변경만으로는 까다로운 내수 시장을 공략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프로모션과 신규 에디션 투입… 반등의 실마리 찾을 수 있나

쉐보레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3월부터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에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와 강화된 주행 보조 시스템을 탑재해 상품성을 대폭 보강했다.
트레일블레이저 또한 검은색 디자인 요소를 강조한 ‘미드나잇 블랙 에디션’을 국내에 새롭게 선보이며 젊은 층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강력한 봄맞이 프로모션과 현금 지원 역시 내수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한 승부수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기의 성적이 쉐보레가 한국 시장에서 단순 생산 기지를 넘어선 브랜드로서 자생력을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대박 상품이 안방에서 외면받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고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