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사우디 자동차 시장서 1·2위 싹쓸이
소형 세단 인기 힘입어 토요타 독주에 균열
현지 공장 설립으로 중동 판도 재편 예고

현대차와 기아가 중동 최대 자동차 시장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일본 브랜드가 철옹성처럼 버텨온 지역에서 한국 브랜드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기아, 사우디 판매 1·2위 싹쓸이…토요타 턱밑 추격
올해 상반기 사우디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은 현대차의 소형 세단 엑센트였다. 1만9천여 대가 판매되며 1위에 올랐고, 그 뒤를 기아의 페가스가 1만5천여 대로 따랐다. 두 모델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셈이다.
여기에 현대차 엘란트라도 1만3천여 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소형 세단 라인업이 현지 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브랜드별 순위에서도 두 회사는 토요타의 뒤를 바짝 쫓았다. 현대차는 6만여 대, 기아는 3만4천여 대를 팔아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합치면 9만6천여 대로, 1위 토요타와 격차는 2만여 대 남짓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넘기 힘들어 보였던 벽이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2023년 한 해 동안 13만여 대를 판매하며 2년 연속 2위를 지켰고, 기아도 같은 해 6만3천여 대를 기록하며 3위에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왔다.
이 같은 약진에는 사우디 시장의 특성이 크게 작용한다. 사우디 소비자들은 대형 SUV나 픽업트럭도 선호하지만, 전체 시장에서는 합리적인 가격과 유지비가 장점인 소형 세단의 비중이 높다.

유가 변동이나 생활비 부담 같은 현실적인 요인도 이런 선택을 부추긴다. 여기에 현대차와 기아의 합리적인 가격대와 연비 효율, 그리고 다양한 사양이 맞물리면서 현지 수요와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현대차, 사우디 국부펀드와 손잡고 첫 현지 생산기지 구축
올해 5월 현대차가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손잡고 세운 합작 생산법인도 큰 의미를 가진다. ‘HMMME’라는 이름의 이 법인은 현대차가 30%, PIF가 7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내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하는 이 공장이 완성되면 연간 5만 대의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생산할 수 있다.
단순 수출에 의존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에서 생산과 공급망을 확보하게 되면서,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신뢰도까지 높일 수 있다.

사우디는 중동 시장에서 비중이 크다. 지난해 중동 전체 판매 249만 대 중 84만 대가 사우디에서 거래됐다. 결국 사우디에서의 성공은 중동 전체를 이끄는 발판이 된다.
현대차와 기아의 성장은 단순히 판매량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토요타가 오랫동안 지켜온 왕국에 균열이 생기고 있으며, 새로운 균형점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지 생산 체제 구축, 소형 세단 경쟁력,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시대까지 고려하면 이 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사우디에서의 성적표는 이제 시작이다. 공장이 가동되고 전기차 라인업이 늘어나면 중동 자동차 시장의 판도는 크게 바뀔 수 있다. 무대는 이미 마련됐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펼쳐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