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 다음은 그랜저?”… K3·쏘나타 등 ‘중산층의 발’ 판매 급감
‘작고 싼 차’ vs ‘크고 비싼 차’… 허리 사라진 ‘모래시계형’ 재편
SUV 열풍·카푸어 감소·고수익 전략이 만든 ‘씁쓸한 양극화’

과거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는 불문율 같은 ‘자동차 계급도’가 있었다. 사회 초년생은 아반떼나 K3, 대리·과장급은 쏘나타나 K5, 그리고 성공의 상징인 그랜저나 K7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사다리였다.
소비자는 자신의 지갑 사정과 연차에 맞춰 차근차근 차급을 올려가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견고했던 사다리는 완전히 무너졌다. 자동차 시장은 이제 ‘가성비의 아반떼’와 ‘성공의 제네시스(또는 수입차)’로 양분됐고, 그 사이를 지탱하던 허리 라인업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우리의 자동차 생태계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일까.
아반떼와 제네시스 사이… ‘쏘나타’의 몰락이 말해주는 것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최근 판매량을 살펴보면 준중형 세단(아반떼)과 준대형/대형 차종(그랜저, 제네시스, 팰리세이드)의 판매량은 견고하거나 늘어난 반면, 중형 세단(쏘나타, K5)의 비중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기아 K3와 같은 준중형 모델은 아예 단종 수순을 밟거나 존재감을 잃었다.
이른바 ‘중간 실종’의 가장 큰 원인은 ‘애매함의 배제’다. 과거 2,000만~3,000만 원대 중형 세단이 패밀리카의 정석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보태 그랜저(또는 SUV)”로 가거나 “실속 있게 아반떼(또는 소형 SUV)”를 선택하는 패턴이 굳어졌다.
어중간한 급을 타느니 확실한 실리콘(가성비)이나 확실한 폼(하차감)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SUV가 집어삼킨 세단 시장… “세단은 아빠 차, SUV는 내 차”

‘SUV 전성시대’ 역시 사다리 걷어차기의 주범이다. 캠핑과 차박 열풍, 그리고 넓은 공간을 선호하는 트렌드는 소비자를 세단에서 SUV로 대거 이동시켰다.
쏘나타 살 돈이면 투싼이나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를 사고, 그랜저 살 돈이면 쏘렌토나 팰리세이드를 고민한다.
제조사의 ‘돈 되는 차’ 올인… 서민의 발은 외면받나
제조사의 전략 변화도 한몫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수익성이 낮은 소형·준중형 세단보다는 마진이 많이 남는 제네시스나 대형 SUV,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신차들은 각종 첨단 편의 사양으로 무장하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쏘나타 풀옵션이 4,000만 원을 넘나드는 시대에, “그 돈이면…”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제조사가 고수익 차종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사이, 서민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중간 다리’ 역할의 차종은 상품성 개선에서 소외되거나 라인업에서 삭제되고 있다.
양극화된 사회의 자화상… “차는 곧 계급”
전문가들은 자동차 시장의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산층이 얇아지면서 자동차 소비 역시 ‘초저가 가성비’ 아니면 ‘초고가 럭셔리’로 쏠리는 모래시계형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카푸어(Car Poor)가 사라지고 구매력을 갖춘 계층만 비싼 차를 사는 형태로 재편되면서, 과거처럼 무리해서라도 차급을 올리며 성취감을 느끼던 문화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아반떼에서 쏘나타를 거쳐 그랜저로 올라가던 소박한 성취감은 이제 옛말이 됐다. 텅 빈 허리를 수입차와 제네시스가 채우며 독주하는 가운데, 2026년 한국 자동차 시장은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라 넘기 힘든 ‘벽’이 되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