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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은 미군 전투 식량으로 시작
- 세계 대전에서 인기 얻어
- 한국 명절 선물로 자리잡아
스팸은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발전한 미군의 전투 식량입니다.
- 1차 대전 후 가공육 기술이 발전
-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주요 식량
- 한국에서 큰 인기로 소비
스팸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미군의 식량 보급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된 가공육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 등에서 미군의 전투 식량으로 널리 사용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 1930년대 시장에 출시된 스팸
- 미군의 식량 보급 효율성을 높임
- 전후 한국 등에서 명절 선물로 인기
- 아이젠하워 등 전쟁 지도자들의 감사 표명
전쟁 덕에 발전에 가공육 기술
제2차 세계 대전의 핵심 식량
6.25 전쟁을 거치며 한국에 상륙

매번 추석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선물을 구매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올해도 역시 스팸이 인기 선물 세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스팸이 사실은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미군의 전투 식량으로 탄생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세계 대전을 거치며 발전한 가공육

우리가 알고 있는 스팸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된 통조림 햄이지만 그 기원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미군은 유럽으로 파견한 병력들을 먹이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매달 6만톤 이상의 고기를 보급해야 했다. 그러나 발골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크고 무거운 고기를 매달 보급선으로 유럽까지 실어 나르는 것은 미군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전쟁이 길어지면서 다른 군수 물자를 보내는 것조차 힘들어지자 식량 보급에 대규모 수송선을 사용하는 것도 미군 입장에선 비효율적인 문제였다.
이 때문에 미군은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병사들에게 고기를 보급하고자 가공육 기술을 연구했고 전쟁 당시 미군에서 병참 장교로 복무했던 제이 호멜은 이때의 경험을 살려 1차 대전 종전 이후 스팸이란 이름의 통조림 햄을 개발했던 것이다.
💡 스팸은 왜 한국에서 인기가 많나요?
스팸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전투 식량으로 사용되며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 전후 한국에서 명절 선물로 자리잡음
- 간편하고 오래 보관이 가능한 음식
- 한국은 전 세계에서 스팸 소비량 3위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다

민수 시장 공략을 위해 1930년대부터 시장에 등장한 스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그 진가를 입증했다.
스팸은 미군을 비롯해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게 보급되며 전투 식량으로 활용되었으며 미국은 보급이 여의찮은 지역에는 스팸을 최우선으로 보급할 정도였다.
이로 인해 미군에선 스팸을 지겨워하는 장교와 병사들이 많았으나 전쟁으로 인해 각종 물자가 부족했던 다른 나라들에겐 스팸이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는 스팸이 없었다면 자신들의 군대는 고기를 먹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의 명장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스팸의 제조사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너무 지나치게 많이 보냈다’는 표현을 덧붙이기도 했다. 작은 부피에 더해 장시간 보관이 용이했던 스팸은 훌륭한 전투 식량으로 연합군의 승리에 일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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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전쟁 유산이지만 인기 선물일까?
6.25 전쟁에서도 미군과 함께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스팸은 전장에서 미군과 여전히 함께했다.
미군은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에서도 스팸을 전투 식량에 포함시켰고 이러한 이유로 미군과 인연이 깊은 나라들이 아직도 스팸을 소비하는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스팸 제조사 측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3위 안에 드는 스팸 소비국이다. 만약 두 번의 전쟁과 식량 보급을 위한 미군의 고민이 없었더라면 한국에서 명절이면 주고받는 선물 세트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