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가장 선망받는 지식인 계층으로 꼽히던 학교 교사들이 과도한 행정 잡무와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극한 직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본연의 임무는 뒷전으로 밀린 채 보여주기식 전시회 준비에만 매달려야 하는 척박한 현실이 현장 교사들의 극심한 환멸을 부르고 있다.
“영어 교사가 과학 모형을”… 막노동판 전락한 북한 학교
최근 대북 전문 매체 데일리NK와 함경북도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청진시 교육 당국은 올여름 개최될 시 단위 ‘교구재 전시회’를 앞두고 일선 중학교 교사들에게 무리한 자료 제작을 강요하고 있다.
이 전시회는 일종의 국가 주도 경쟁 대회로, 각 학교가 자체 제작한 차트나 모형, 시청각 도구 등을 전시해 교육 혁신의 성과를 평가받는 자리다.

문제는 학교 관리자들이 전시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평교사들에게 전공과 무관한 교구재까지 무조건 만들어 내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지에서는 벽에 붙일 차트 하나면 충분한 영어학이나 한문학 교사들에게조차 생물이나 과학 과목의 복잡한 시범 도구를 만들어 내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있다.
과거 북한에서 교원은 국가가 우대하는 엘리트이자, 학생들의 학업과 사상 교육을 온전히 책임지는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교사들은 방과 후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지도할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오직 학교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밤늦게까지 톱질과 가위질을 반복하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했다.
교육 혁신으로 포장된 하향식 착취의 굴레

이러한 모순된 상황의 이면에는 북한 특유의 맹목적인 하향식 지시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평양의 중앙 교육 당국이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라며 원론적인 지시를 내리면, 이는 도 단위와 시 단위를 거치며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무한 경쟁 시스템으로 변질된다.
결국 학교의 성과주의에 눈이 먼 교장과 행정 관리자들이 실무자인 교사들에게 무리한 할당량을 떠넘기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현장의 교사들 사이에서는 당국이 말로만 인재 양성을 외칠 뿐, 정작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조차 보장하지 않는다는 원성이 팽배하다. 각종 국가 동원과 잡무가 겹겹이 쌓이면서 숨 쉴 틈조차 없다는 탄식이 학교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자신이 학생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자인지, 아니면 위에서 시키는 전시용 장난감을 만드는 행정 실무자인지 혼란스럽다는 북한 교사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무너져가는 북한 교육 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