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70여 년간 유지된 군사분계선(MDL)을 ‘남부국경선’으로 못 박으며 정전체제 무력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이 안보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공존을 위한 남북 합의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원식 연구위원은 최신 보고서를 통해 적대적 두 국가론에 입각한 북한의 국경화 시도를 단순한 도발이 아닌 남북 관계의 구조적 전환기로 진단했다.
“위반에서 침략으로”… 전면전 핑계 찾는 북한
1953년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의 안정을 담보해 온 잠정적 군사 통제선이 영구적인 물리적 단절선으로 탈바꿈할 위기에 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 이후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하고 철조망을 올리는 등 국경 고착화 조치를 서슴지 않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남북 간 군사 충돌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교전이나 마찰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틀 안에서 수습과 관리가 가능했다.
반면 북한이 독자적인 영토와 영해를 주장하는 ‘남부국경선’ 체제에서는, 우리 군의 정상적인 작전이나 우발적 충돌이 즉각적인 ‘영토 침략’으로 규정된다.
이는 사소한 국지전도 상대의 영토를 침범한 전면전이나 고강도 보복의 구실로 악용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한다.
특히 북한이 불법선으로 규정하며 0.001mm의 침범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는 당장 룰 없는 화약고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50년 전 독일의 타협에서 찾는 반전 카드

하지만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거친 행보 이면에 체제 생존을 위한 불안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의 두 국가론과 국경선 주장은 결국 외부로부터 완전한 ‘국가성’을 인정받아 흡수 통일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적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역이용해 남북 간 공존의 규칙을 새롭게 짜는 ‘남북기본협정’ 체결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절의 수렁에 빠지는 대신, 새로운 합의 틀을 만들어 무력 충돌의 뇌관을 안전하게 해체하자는 구상이다.
무작정 대립하기보다는 과거 동서독의 지혜를 빌려올 필요성도 제기된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당시, 동독은 확고한 국경선 인정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서독은 헌법상 통일 지향성을 지키기 위해 ‘기존 경계선’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관철하며 양측의 체면을 살렸다. 결국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타협을 통해 군사적 충돌을 막고 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한반도 역시 우리 헌법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의 국가성 인정 요구를 다룰 정교한 협상 전략이 필요해졌다.
북한이 들이민 적대적 두 국가론의 청구서를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 공식을 써 내려갈 기회로 바꾸는 우리 정부의 전략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