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산 수출에서 진짜 수익은 ‘판매 후’에 발생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필리핀 국방부와 체결한 1,014억원 규모의 FA-50PH 성과기반군수지원(PBL) 계약은 이 명제를 입증하는 사례다.
2월 6일 발표된 이번 계약은 단순 부품 공급을 넘어, 항공기 가동률과 정비 신뢰도 등 ‘성과’를 기준으로 3년간 종합 군수지원을 제공하는 구조다.
주목할 점은 계약 확대 속도다. KAI는 2024년 12월 수출국 최초로 필리핀과 270억원 규모의 1년 단기 PBL 시범 계약을 체결했다.
약 1년여 만에 높은 항공기 가동률 확보 성과를 인정받아 3년 장기 계약으로 확대됐다. 이는 항공기 수명주기 30~40년간 안정적 수익 기반을 구축하는 선진 군수지원 모델이 실제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필리핀은 2014년 FA-50PH 12대를 도입한 뒤 10년간 KAI와 신뢰 관계를 쌓았다. 이 신뢰는 2025년 12대 추가 도입, 기존 기체 성능개량 사업으로 이어지며 ‘초도 수출→후속지원→추가 도입’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시범 270억에서 장기 1,014억으로, 성과로 입증한 신뢰
PBL(Performance-Based Logistics)은 단순히 부품을 공급하는 기존 방식과 다르다. 항공기의 실제 가동률, 정비 완료 시간, 고장 발생률 등 ‘운용 성과’를 계약 기준으로 삼는다.
고객 입장에서는 항공기가 실제로 날아야 비용을 지불하므로 리스크가 낮고, 공급자는 안정적 장기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KAI는 2010년부터 약 15년간 한국공군의 KT/A-1, T-50, 수리온 항공기에 대해 PBL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 12월 필리핀과 1년 단기 계약을 체결했고, 안정적 운용 결과를 제시하며 약 1년여 만에 3년 장기 계약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방산 업계 관계자들은 “시범 운영 기간 동안 높은 가동률을 입증한 것이 필리핀 측 신뢰를 얻은 결정적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획득비의 2~5배, 30년간 이어지는 수익 파이프라인
항공기 후속지원 시장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업계에 따르면 항공기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후속지원 비용은 초도 도입 ‘획득비’의 2~5배에 달한다.
필리핀이 2014년과 2025년 도입한 FA-50PH 24대의 경우, 구체적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향후 30~40년간 후속지원 비용이 획득비의 수배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KAI는 이 점에 주목해 후속지원 사업을 핵심 사업군으로 육성 중이다. 필리핀 외에도 폴란드(48대), 말레이시아(18대), 이라크(24대) 등 FA-50 수출국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 국가 역시 장기 후속지원을 요구하는 추세다. 2025년 4월에는 태국과도 PBL 계약을 체결하며 해외 사례를 확대했다.
필리핀 모델, 글로벌 방산 시장의 새 표준 되나
필리핀 사례는 단순한 수출 성공을 넘어 ‘신뢰 기반 확장 모델’을 보여준다. 2014년 초도 12대 수출 이후 10년간 안정적 후속지원을 제공하며 쌓은 신뢰가 2025년 12대 추가 도입, 기존 기체 성능개량 사업, 그리고 이번 3년 PBL 계약으로 이어졌다.
박경은 KAI CS본부장은 국산 항공기를 운용 중이거나 운용을 예정한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국가별 운용 환경과 요구에 최적화된 맞춤형 후속지원 체계를 구축해 지속 가능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항공·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PBL은 경쟁 우위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FA-50처럼 중소 규모 공군국가들을 타깃으로 하는 경전투기 시장에서는 ‘저렴한 구매가’보다 ‘안정적 장기 운용’이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고 있다.
방산 전문가들은 “KAI가 15년간 국내에서 쌓은 PBL 운영 경험을 해외로 확장하며, 단순 제품 판매자가 아닌 ‘생애주기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KAI의 필리핀 FA-50PH PBL 계약은 방산 수출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준다. 초도 판매 후 10년간 신뢰를 쌓아 추가 도입과 성능개량, 그리고 장기 후속지원 계약으로 확장하는 선순환 구조는 향후 폴란드, 말레이시아 등 다른 수출국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획득비의 수배에 달하는 후속지원 시장을 선점하며, KAI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판매 후가 더 큰’ 비즈니스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