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에너지 동맥이 봉쇄됐다.
이란이 지난 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20~25%가 차단됐고, 현재 페르시아만에는 유조선 150척 이상, 컨테이너선 170척(총 45만 TEU)이 발이 묶인 상태다.
유조선 운임은 연초 대비 17배 폭등했고, 컨테이너당 1,000달러 이상의 할증료가 부과되고 있다.
Hapag-Lloyd는 해협 통과를 전면 중단했고, Maersk는 희망봉 우회 항로로, CMA CGM은 페르시아만 내 선박을 즉시 대피시켰다. 글로벌 해운사들의 반응은 봉쇄의 현실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란은 미묘한 단서를 달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3월 20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해협을 닫지 않았고 해협은 열려있다”며 “이란을 공격하는 적의 선박만 봉쇄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선별 통과’ 전략으로, 적성국과 중립국을 갈라치는 외교 레버리지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원유 70% 호르무즈 의존…일본의 절박함

일본의 절박함은 수치가 설명한다. 일본은 원유 수입의 70% 안팎을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량에 의존한다. 한국 60%대, 중국 40%대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3월 17일과 이후 두 차례 아라그치 장관과 전화 회담을 갖고, 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인 일본 관련 선박의 안전을 요청했다. 이란 측은 이에 화답하듯 “일본 선박과 협의를 거쳐 통과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공식적으로 ‘개별 통과 협의’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공개 입장과 물밑 협상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만 통과’ 딜레마…이중 전략의 민낯

일본의 전략은 2019년 전례를 따르고 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직접 이란을 방문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면담했고, 미국의 ‘호르무즈 호위 연합’ 참여를 거부한 채 오만해와 예멘해 먼바다에 함선과 초계기를 단독 파견했다. 미·이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면서도 미국 주도 군사 작전과는 거리를 두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번엔 모테기 외무상 스스로 “우리만 통과시켜 달라는 방식이 좋은지 어떨지”라며 회의적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 야당 참정당의 가미야 소헤이 대표가 “인도가 이란과 이미 협상 중”이라며 압박을 가하자 나온 발언이다. 개별 협상이 우방국과의 관계 악화와 국제 규범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공개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전체의 안전”이라는 다자주의 언어를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이란과 개별 협의를 진행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면제 의혹과 글로벌 연쇄 마비 경고

더 주목할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 초대형유조선(VLCC) ‘New Vision’호가 3월 1일 해협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의 ‘선별 통과’가 중국에 대한 비공식 면제를 포함한다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이 협의 대상을 선택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이는 외교력이 아닌 지정학적 편의에 따라 에너지 공급이 결정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부산항만공사 이응혁 국제물류지원실장은 “봉쇄가 계속될 경우 선복 부족이 심화되고, 한 노선의 혼잡이 다른 정기노선까지 연쇄 마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이 약 50km, 실제 항행 가능 수로는 각 방향 3km에 불과한 병목이다.
연간 약 5,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가 이 좁은 수로를 통과한다. 이란이 쥔 ‘선별 통과’ 카드는 단순한 외교 신호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질서를 흔드는 전략 무기로 작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