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첨단 무기를 다루는 기사에는 “전투기 조종사 1명 키우는 비용이 최신형 F-35 스텔스 전투기 한 대 값보다 비싸다”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과장된 속설이다.
미국 회계감사원(GAO) 자료에 따르면 최신 F-35A 기체 단가는 7790만 달러(약 1000억 원)를 웃도는 반면, 미 공군이 전투기 조종사 1명을 임무 주도 가능한 숙련급으로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약 300만~1100만 달러(약 40억~150억 원)로 추산된다.
하지만 비용의 절대적 크기가 기체 가격에 미치지 못할 뿐, 숙련된 조종사 1명이 지니는 전략적 가치와 그 양성에 투입되는 시간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막대하다.
150억 원짜리 인재, 5년의 시간

GAO에 따르면 미군에서 조종사 한 명이 기본적인 비행 훈련을 거쳐 전술을 주도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최소 5년 이상의 뼈를 깎는 시간과 1000만 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
단순한 비행기 조작을 넘어 고가의 시뮬레이터 훈련, 천문학적인 항공유 소모, 최고급 교관의 인건비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현대 공중전에서 전투기의 성능만큼이나 순간적인 판단력과 전술 숙련도를 갖춘 베테랑 조종사의 역량이 생존과 승패를 가르기 때문이다.
한국 공군 역시 한 명의 전투기 조종사를 정예 요원으로 길러내기 위해 오랜 기간과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비싸게 키웠는데 민항사로”…뼈아픈 인력 유출

한국군이 직면한 진짜 위기는 이렇게 막대한 혈세를 들여 애써 키워놓은 베테랑들이 군복을 벗고 민간 항공사로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공군은 사관학교 출신 조종사에게 15년, 그 외 비행 자격을 취득한 장교에게 13년이라는 긴 의무복무 기간을 부여해 국가의 투자금을 회수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조종사로서 가장 기량이 만개하는 ‘숙련급’ 시기와 겹친다는 점이다.
최근 국방부 통계 등을 인용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전역한 공군 숙련급 조종사 741명 가운데 무려 97.7%에 달하는 724명이 곧바로 민간 항공사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종사들의 전역 당시 평균 복무 기간 역시 2021년 27.3년에서 2024년 18.1년으로 짧아지는 추세다.
군에 남아 핵심 지휘관과 전술 교관으로 활약해야 할 허리급 인재들이 의무복무를 마치기 무섭게 민항기 조종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수당 인상에도 역부족…국가적 손실
숙련급 전투기 조종사의 유출은 단순한 군 내부의 인사 문제를 넘어,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국가적 투자가 민간 기업으로 고스란히 유출되는 것과 다름없다.
전투기 조종사는 필요하다고 해서 단기간에 징집이나 훈련으로 찍어낼 수 있는 대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 전력 공백의 타격은 더욱 뼈아프다.

물론 군 당국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조종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2025년 하반기부터 전투기 조종사의 항공 수당을 대폭 상향하는 등 당근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민항사가 제시하는 파격적인 연봉, 안정적인 근무 여건 등 시장의 유인이 여전히 강력해 군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