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무기로 빼어 든 금융 제재가 오히려 중국 위안화 결제망의 덩치를 폭발적으로 키워주는 기막힌 나비효과를 낳고 있다.
중국 위안화 국제 결제 시스템(CIPS)을 통한 무역 결제액은 지난 3월 기준 1조 4,600억 위안에 달하며, 이는 단 5년 만에 3배나 폭증한 수치다.
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위기가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고 중국의 금융 굴기 확장을 돕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제재의 역설”… 달러 대신 위안화 택한 푸틴과 이란
글로벌 자금이 중국 결제망으로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와 이란 등 반미 진영 국가들의 달러 이탈 현상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 변동은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주요 은행들을 국제은행 간 통신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전면 퇴출시키자, 돈줄이 막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을 위한 재원 확보 수단으로 자국 통화와 중국 위안화를 적극 끌어안았다.
그 결과 현재 러시아와 중국 간 결제는 사실상 완전히 자국 통화로 전환된 상태다.
여기에 올해 2월 말 발발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선제공격은 위안화 의존도를 중동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분쟁 직후 전 세계 원유의 핵심 물류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란은, 우호국 선박의 통행을 허용하는 대가로 통항료 결제를 암호화폐와 중국 위안화로 지정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로 달러 결제가 원천 차단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위안화를 생명줄로 잡은 모양새다.
3% 점유율의 반란, 조용히 웃고 있는 시진핑
러시아와 이란 등 제재 국가들의 고립 돌파구로 시작된 위안화 거래는 이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전통적 산유국으로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실제로 올 3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석유 거래 중 위안화 결제 비율은 무려 41%까지 치솟았으며, 국유 대형 은행들마저 줄줄이 중국의 CIPS에 가입했다. CIPS의 하루 평균 결제액은 올 4월 들어 사상 최고치인 1조 2,200억 위안(약 23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전체 국제 송금 시장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파이는 아직 작다.
현재 전 세계 결제 통화 점유율을 보면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스위프트가 51%를 장악하고 있는 반면, 위안화의 점유율은 약 3% 수준에 불과해 유로화나 엔화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러 패권이 당장 무너질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중국은 이러한 지정학적 위기를 발판 삼아 비달러 결제망을 촘촘히 엮어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디지털 위안화(CBDC)를 활용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와의 기업 간 무역 결제 실증 실험까지 돌입했다.
미중 정상회담 등 겉으로는 미국과의 갈등 관리를 표방하면서도, 뒤에서는 훗날 있을지 모를 경제 제재에 대비해 위안화 방어막을 굳건히 다지는 치밀한 구조 만들기가 속도를 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