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예상 밖 데이터에 ‘발칵’ 뒤집힌 미국

월러 이사 돌연 금리인하 주장
30년 만에 연준 균열 노출
트럼프 압박 속 독립성 논란 가중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부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연준 내 대표적인 강경파 인사가 갑작스럽게 금리 인하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공개적인 의견 대립에 시장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30년 만의 균열…강경파의 의외적 입장 선회

변신의 주인공은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다. 그는 줄곧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외치던 대표적인 ‘매파(긴축 선호)’ 인사로 꼽혔다.

그런 그가 3일(현지시간)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달 열리는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앞으로 수개월간 여러 차례에 걸친 추가 인하까지 시사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던졌다.

월러 이사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의 배경에는 ‘고용 시장’에 대한 깊은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고용 시장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현재의 높은 금리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고용 충격이 발생하면, 겉으로 보이는 지표보다 훨씬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4.25∼4.50%)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적정 수준인 ‘중립금리’보다 1.0~1.5%포인트나 높다고 진단했다. 이는 경제에 필요 이상으로 강한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생각은 월러 이사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파장은 더욱 크다. 그는 지난 7월 30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미셸 보먼 부의장과 함께 금리 동결이라는 다수 의견에 반대하며 인하를 주장했다.

연준 이사 2명이 동시에 반대 의견을 낸 것은 1993년 이후 3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연준 지도부 내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심각한 이견이 표출된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치적 입김인가, 경제적 소신인가

공교롭게도 금리 인하를 주장한 월러 이사와 보먼 부의장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이다.

이 때문에 월가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금리 인하 압박에 이들이 정치적으로 호응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제롬 파월 현 의장의 뒤를 이을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11명의 차기 의장 후보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준의 독립성 논란이 불거지자 월러 이사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연준의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며, 사람들이 우려할 만한 사안이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연준이 독립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행보가 정치적 고려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는 이는 많지 않은 분위기다.

월러 이사의 발언으로 시장의 모든 눈은 이제 오는 9월 16일과 17일에 열리는 FOMC 회의로 쏠리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라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의 발언을 9월 금리 인하의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이며, 향후 3~6개월 동안 최소 1%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월러 이사는 “금리 인하 결정이 회의 때마다 내려질지 여부는 향후 경제 지표를 지켜봐야 알 것”이라며 속도 조절의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