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반, 남극 탐사를 위해 ‘쇄빙선(얼음을 깨는 배)’이 절실했던 대한민국은 극지 연구의 선발주자인 서방 국가와 러시아의 철저한 텃세에 시달려야 했다.
자체 쇄빙선이 없던 시절, 우리는 외국 쇄빙선 일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값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2003년에는 쇄빙선이 없어 고무보트로 구조에 나섰던 젊은 연구원이 순직하는 비극까지 겪으며 극지 연구의 뼈아픈 현실을 절감해야 했다.
하지만 약 10년 뒤, 콧대 높던 극지의 해양 대국들은 꽁꽁 얼어붙은 남극 바다 한가운데서 붉은색의 한국 쇄빙선을 향해 “제발 살려달라”며 구조 신호를 보내는 기막힌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가 직접 뚫는다”… 혹독한 수모 딛고 태어난 ‘아라온호’

당시 외국의 낡은 쇄빙선을 며칠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은 수십억 원에 달했다. 철저한 ‘갑질’이었다. 서방 강대국들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극지방의 자원과 연구 주도권에 숟가락을 얹는 것을 원치 않았다.
뼈아픈 희생과 서러움을 삼킨 한국은 “우리만의 쇄빙선을 갖겠다”는 일념으로 선진국의 기술 자문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국내 최초의 최첨단 쇄빙연구선 건조에 착수했다.
섭씨 영하 40도의 극한과 1m가 넘는 두꺼운 얼음을 깨부수며 나아가야 하는 특수 선박 건조는, 상선(商船) 1위인 한국 조선업계에게도 낯선 도전이었다.
숱한 밤을 지새운 설계와 혹독한 테스트 끝에 2009년, 마침내 세계 최고 수준의 쇄빙 능력을 갖춘 7,500톤급 ‘아라온호(Araon)’가 기적처럼 위용을 드러냈다.

쇄빙선 건조 경험이 전무했던 조선업계가 핀란드 등 선진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단숨에 쇄빙연구선의 국산화를 이뤄낸 것이다.
비웃던 자들을 구원하다… 전 세계가 경악한 남극의 크리스마스
아라온호의 진가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발휘됐다. 2011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남극 로스해 인근. 러시아 국적 선박 ‘스파르타호’가 1.5m 두께의 거대한 빙하에 부딪혀 선체에 큰 구멍이 뚫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고, 32명의 선원들은 칠흑 같은 추위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
사고 해역은 육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주변국 쇄빙선들의 즉각적인 투입이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뉴질랜드에서 남극 탐사를 준비 중이던 한국의 아라온호가 러시아 외교부의 긴급 구조 요청을 받고 거침없이 뱃머리를 돌렸다.

무려 8일 밤낮을 달려 현장에 도착한 아라온호는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들을 산산조각 내며 가라앉던 스파르타호 코앞까지 길을 뚫어냈다.
한국의 독자적인 쇄빙 기술이 러시아 선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끄집어낸 순간이었다. 당시 구조된 32명의 러시아 선원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얼음을 깨고 붉은 선체를 드러낸 아라온호를 보며 뜨거운 환호와 함께 깊은 감사를 표했다.
한계를 부수고 바닷길을 여는 ‘압도적 실행력’
불과 10여 년 전, 얼음 깨는 기술이 없다며 문전박대와 멸시를 일삼던 나라의 선원들이, 우리가 독자 개발한 배에 올라타 목숨을 구걸한 이 영화 같은 서사.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만들어낸 해프닝이 아니다.
기득권의 거대한 카르텔과 혹독한 무시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철판을 깎고 용접해 기어코 얼어붙은 바다의 심장부를 뚫어낸 압도적인 실행력.

남들이 그어놓은 한계선을 지독한 완벽주의 하나로 산산조각 내버리는 한민족 특유의 ‘개척 본능’이 만들어낸 짜릿하고 통쾌한 역전극이다.
동냥하던 변방국에서 극지방의 생명을 구원하는 지배자로 우뚝 선 대한민국. 남극의 두꺼운 빙하마저 두 동강 내버린 우리의 거침없는 붉은 항해는, 이미 전 세계의 바다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