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지평막걸리, 어떻게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나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 끄는 한국의 미생물 발효주
건강 트렌드와 한류 열풍까지 성공 비결 살펴보니

“이게 대체 뭐에요? 알코올 맛은 약한데 뭔가 특별한 맛이 있네요.”
처음 막걸리를 접한 외국인들의 반응이다.
한때 노인들의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막걸리가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지평막걸리는 연매출 2억 원에 직원 3명에 불과했던 지역 양조장에서 10년 만에 매출 200억 원을 돌파한 성공신화를 썼다.
100배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위기에서 시작된 변화, 20대 청년의 도전

2010년대 초, 지평주조는 존폐 위기에 몰렸다.
막걸리 시장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고령층 중심의 소비 구조와 지역 한정 유통망은 성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때 20대의 젊은 김기환 대표가 경영을 맡으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그는 “막걸리는 노년층이 마시는 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젊은 세대를 겨냥한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추진했다.

막걸리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파격적이었다.
“고객이 찾지 않는 막걸리는 더 이상 막걸리가 아니다. 막걸리는 무조건 6도여야 한다는 법도 없다. 우리는 고객 마음의 온도에 맞추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기존 막걸리의 도수를 6도에서 5도로 낮추고, 단맛을 강화해 부드럽고 순한 맛을 추구했다.
이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춘 결정이었고, 고객 시음회를 통해 선호도를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세계로 뻗어나가는 막걸리

지평주조의 성공에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전략이 있었다.
전통 방식인 밀 누룩을 고수해 묵직하고 깊은 맛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설비 투자로 맛의 일관성과 품질을 높였다.
동시에 강남, 홍대, 신촌 등 2030세대가 모이는 상권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SNS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젊은 층과 소통하며,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진과 후기를 공유하도록 유도한 것이 초기 팬덤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대형마트와 편의점 입점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유통망을 구축했고, 이는 전국구 브랜드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했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제2공장까지 신설하며 생산능력을 대폭 확장했다. 최근에는 경기 양평군 지평양조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고 지평주조 측이 9일 밝혔다.
4대째 이어져 온 지평주조의 철학과 장인정신을 담은 이 공간에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프랑스 대대의 사령부로 사용됐던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다.
프랑스군 장군이 썼던 집무 책상을 보관해 공간의 역사성과 의미를 더했다. 지평주조 관계자는 “지평양조장은 지난 100년간 지평주조가 지켜온 전통과 양조 철학을 담아낸 공간이다.

우리 술의 가치를 알리고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대한민국 국주’
막걸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팬데믹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막걸리에 함유된 프로바이오틱스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 부각되며 서구권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한국의 대표 막걸리 수출기업 국순당은 2019년 70억 원이었던 막걸리 수출액이 2022년 137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미국이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도 최근 4년 사이 수출이 2~5배까지 늘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한인 1.5세대가 창업한 ‘마쿠’라는 브랜드가 MZ세대 사이에서 40만 캔 이상 판매되는 등 현지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서울 을지로 등지에는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막걸리집이, 유럽 등지에서는 막걸리 빚기 교실이 열려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막걸리는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고, 다른 술과는 또 다른 흥미로운 맛이 있다”고 평가한다. 최근에는 유자, 딸기, 복숭아 등 과일을 넣은 막걸리, 고구마 등 다양한 곡물로 만든 막걸리 등 외국인 입맛에 맞춘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 고흥의 유자 막걸리는 새콤달콤한 맛으로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수출이 41% 증가했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막걸리 역시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막걸리는 이제 단순한 술을 넘어 한국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체험하는 매개체로도 각광받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대한민국 전통주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막걸리.
그 놀라운 성장 비결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 소비자 중심의 제품 개발, 그리고 한국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린 진정성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