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동차 산업이 딜레마에 빠졌다. 글로벌 전기·자율주행차 시장을 주도하는 중국과 가격 및 속도 경쟁을 벌여야 하는 골든타임에, 국내 생산 공장의 법적·노무 리스크는 오히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뗀 핵심 부품 공급망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세제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껍데기만 남는다”… 中 생태계에 밀리는 한국
정구민 한국모빌리티학회장은 지난 8일 열린 ‘미래차 산업발전 전략 포럼’에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부품사 및 완성차 기업과의 협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브랜드는 자국산이지만 핵심 부품인 배터리나 전장 부품은 중국 공급망에 철저히 의존하게 되는 ‘엠티 셸 리스크(Empty Shell Risk·껍데기만 남는 위험)’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배터리, 소프트웨어, 센서 등 첨단 부품 생태계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중국은 일찌감치 생산비 우위와 정부 보조금을 무기로 이 생태계를 국가 단위로 키워냈다.
반면 한국은 고질적인 고비용 생산 구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국내 완성차 업계의 노무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변수로 거론된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 단체교섭 의무가 생길 수 있다는 법적 요건 탓이다.
1·2차 협력사와 물류·모듈·전장 등 복잡한 하청망을 관리해야 하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생산 지시나 납기·품질 관리가 하청 근로조건에 영향을 줬다고 판단될 경우 교섭·쟁의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커진 셈이다.

고비용 생산 구조에 노무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생산을 고집할 경제적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근책 내미는 주요국, 韓은 촉진세제 절실
한국이 규제와 노무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사이, 경쟁국들은 자국 자동차 산업을 방어하기 위해 공격적인 당근책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에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일본이 전략 분야에서 국내생산 촉진세제를 도입한 사례를 주목했다.
박정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경제안보추진법을 통해 배터리 설비 투자액의 상당 부분을 직접 보조하고 있으며, 도요타는 2030년까지 총사업비 3300억 엔(약 3조 원) 중 1178억 엔을 이미 1차로 지원받았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요구하는 ‘국내생산 촉진세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완성차 기업에 대한 단순 지원을 넘어 국내 소재·부품 등 전후방 산업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방어막 성격이다.
오성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정책기획실장은 이 세제가 산업 전반의 실질적 수요를 창출해 생태계 전환을 견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중국은 저가 부품을 쏟아내고 일본·EU는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선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무 비용 부담까지 커진 한국 자동차 산업에 촉진세제 같은 지원이 없다면 완성차 기업의 국내 생산 이탈을 막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