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디지털 달러’로 통화질서 뒤흔들까
스테이블코인 확산 땐 원화 약세·자본유출 우려
한국, 규제 제자리…세계는 발빠르게 대응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꺼내든 한 가지 정책이 한국 경제에도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중심의 새로운 결제 수단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는 이 정책이, 한국의 환율과 금융시장에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정책의 핵심은 ‘디지털 달러’로 불리는 화폐다. 정식 명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쉽게 말해, 1코인이 항상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는 디지털 화폐다.
가격이 급등락하는 일반 암호화폐와는 다르게, 실물 달러와 1대1로 연동돼 있어 안정성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스테이블코인을 민간 주도로 발행하고, 글로벌 결제망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스테이블코인 확산 시나리오… IMF 악몽 되풀이되나
이 화폐가 현실에서 널리 쓰이게 되면, 결제 기능을 넘어 각국의 통화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에서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경우 원화 사용이 줄고 달러 수요가 늘면서 원·달러 환율이 10% 가까이 상승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코스피 지수도 급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한국은행의 기존 역할도 흔들릴 수 있다. 중앙은행은 지금까지 통화량을 조절하거나 외환시장에 개입하며 경제 안정을 도모해 왔다. 하지만 디지털 달러 사용이 늘어나면, 이러한 개입이 효과를 내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스테이블코인은 인터넷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어, 위기 시에는 자본 유출이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급격한 자본 유출과 함께 통화가치 급락,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마저 미흡하다면,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외환보유고 부족과 시스템 리스크로 인해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것과 같은 국가적 경제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는 달리는데… 한국, 디지털 자산 규제 ‘제자리걸음’

실제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관련 법안 정비를 서두르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MiCA’라는 규제를 본격 시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17년 긴급대책 이후 제한적인 입법만 이뤄졌고, 현재는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둔 1단계 입법만 시행된 상태다. 금융시장 투명성과 산업 육성을 위한 2단계 입법은 아직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자산의 실사용이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지나치게 보수적인 접근은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통화 정책과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기술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은 이제 투자 수단을 넘어 통화의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이 이미 준비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도 더는 늦출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변화에 대비하는 구체적이고 유연한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