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소비자원이 손해배상 집단소송법의 소급 적용에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동안 법률관계의 안정을 이유로 신중론을 폈지만, 쿠팡과 SK텔레콤 등에서 대규모 고객 데이터가 새어나가는 사태가 잇따르자 실효적인 권리 구제가 먼저라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개별 소송을 포기했던 수천만 명의 피해자가 정보유출 보상금을 받아낼 길이 열리면서 산업계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푼돈 보상 관행 깨질까… 한국과 미국의 엇갈린 판결
기존 국내 개인정보 위자료는 사실상 위로금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피해를 본 소비자가 직접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만 구제받을 수 있다. 승소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하는 1인당 위자료 평균액은 대개 10만 원에서 30만 원 선을 밑도는 실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선제적으로 거액의 보상안을 내놓을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반면 이미 집단소송제가 뿌리내린 해외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미국의 이동통신사 T-모바일은 2021년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총 3억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600억 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유출 피해 규모가 큰 고객은 1인당 최대 3,200만 원에 달하는 금전적 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반 행위 한 번이 막대한 징벌적 비용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소급 적용 현실화 땐 수천억 원대 리스크 부상

만약 박균택 의원이 발의한 집단소송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과거 사건까지 소급 적용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재무적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새로 논의되는 법안은 한 명의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나머지 피해자 전부에게도 동일한 배상 효력이 돌아가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보유출 사고를 겪은 국내 대기업들의 사례에 이 기준을 대입해보면 파장은 명확해진다.
해킹 피해 규모가 적게는 수백만 명에서 많게는 천만 명 단위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1인당 10만 원의 최소 배상액만 책정되더라도 기업이 물어내야 할 총비용은 단숨에 수천억 원 규모로 뛴다.

분쟁 조정을 거부하며 버티던 기업들에게는 강력한 압박 수단이 생기는 셈이다.
소비자원 측도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조정안을 거부할 경우 개별 소송 외에 피해자를 구제할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법안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집단소송이 본격화될 경우 유럽 등의 사례처럼 방대한 증거 자료 조사와 행정력이 요구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소비자원의 예산과 인력 규모로는 이를 온전히 뒷받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