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업점 5년간 1,000개 넘게 사라져
디지털 소외계층 금융 접근성 위협받아
지방 중소도시는 최대 27km 이동해야

“은행을 찾으려면 이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합니다. 영업점이 다 사라지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떡하라는 건가요?” 경기도 외곽에 사는 김모(67) 씨의 하소연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현금이 필요할 때면 한참을 걸어 다른 동네까지 가야 한다는 김 씨의 사연은 현재 대한민국 금융 환경이 직면한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은행들이 경영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영업점을 계속 줄이면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금융 서비스 접근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의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 주민들은 그 불편이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사라져가는 은행 영업점, 5년 새 1,189개 문 닫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 영업점 수는 2019년 말 6,738개에서 2023년 말 5,747개로, 5년간 무려 1,000개 가까이 감소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는 5,690개로 줄어들었다.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2019년 말 3만 6,464개에서 지난해 10월 말 2만 7,157개로 크게 줄었다.
특히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의 영업점 축소 규모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근 5년간 KB국민은행은 26.3%, 우리은행은 24%, 신한은행은 22.9%, 하나은행은 18.8%의 영업점을 폐쇄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올해 1월에만 서울 종로구 세종로금융센터를 포함한 전국 21곳의 영업점을 통폐합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은행 영업점의 53.7%와 ATM의 56.4%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비수도권 지역은 금융 서비스 접근성이 더욱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디지털 소외계층의 금융 고립, 갈수록 심화
은행들이 영업점을 줄이는 주된 이유는 비대면 금융 거래의 급속한 확대다. KB국민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분기 적립식 예금 신규 가입 중 비대면 가입 비중은 평균 82%에 달했다. 신용대출도 75%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경우 86.8%가 평소 금융거래 시 비대면 채널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젊은 세대들에게 모바일 앱을 통한 금융 서비스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전환의 흐름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존재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국내 은행 영업점 분포에 대한 분석과 시사점(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영업점 이용을 위해 소비자가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지역별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 부산, 대전 등 대도시는 은행까지의 거리가 1km를 넘지 않았지만, 강원, 전남, 경북 등의 지역은 최대 27km에 달했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고령층 비중이 높은 곳으로, 디지털화에 가장 취약한 계층의 금융 소외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영업점까지 20km 넘게 가야 하는 지역 주민들의 경우,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금융 서비스 자체에서 소외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2024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해외는 더 까다로운 폐쇄 절차, 한국은?

해외 주요국들은 은행 영업점 폐쇄에 대해 보다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은행이 영업점을 폐쇄할 때 최소 90일 전에 연방 규제 당국과 고객에게 통보해야 하며, 폐쇄 결정의 이유와 이를 뒷받침할 통계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영국은 지난해 7월 ‘새로운 현금 접근성 규정’을 공표해 은행들이 현금서비스 접근성에 불편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전까지는 영업점 폐쇄를 보류하도록 했다. 캐나다는 비도시 지역 영업점 폐쇄 시 반경 10km 내에 다른 지점이 없다면 6개월 전에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23년 4월부터 은행 영업점 폐쇄에 관한 내실화 방안을 시행하고 있으나, 여전히 취약계층과 소외 지역의 금융 접근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취약계층 밀집 지역 등에서 영업점을 닫을 경우 프로 스포츠팀에서 신인선수를 선발하는 방식인 드래프트 제도처럼 은행권이 영업점을 폐쇄할 지역을 순차적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외 일부 은행들이 영업점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금융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JP모건체이스 은행은 대면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017~2022년 부실 영업점 1,112개를 정리하는 동시에 신규 영업점 650개를 확대했다.
이 은행은 2027년까지 500개 영업점을 추가로 신설할 계획이며, 비용 관점이 아닌 수익 관점에서 영업점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다.
대안 마련에 나선 금융당국, 우체국 등 활용
금융당국은 취약층의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단 은행 영업점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 절차를 강화하고, 폐쇄 후 소비자 영향 평가를 실시하도록 했다.
또한 금융사의 ‘금융소비자 보호 내부통제 기준’에 고령자·장애인 거래 편의성 제고 등에 관한 사항을 반영하도록 업권별 표준안을 마련했다. 더불어 이르면 올해 7월부터는 전국에 2,500여개 영업점을 갖춘 우체국 등에서 예·적금, 대출과 환거래 등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체국 외에도 다른 은행이나 은행이 최대 주주인 법인, 지역별 영업망을 보유한 신용협동조합 등 상호금융회사, 저축은행의 은행 대리업무 진입도 허용된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2022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공동 점포를 만들었다. 두 은행 모두 해당 지역에 영업점이 없었던 상황에서 비대면 금융 확산으로 대면 업무가 줄어 불편을 겪는 취약층을 위한 조치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1월 8개 은행 지주 이사회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은행 지주가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 부동산 및 담보·보증서 대출 위주의 여신 운용, 점포·인력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 등 손쉬운 방법으로 단기성과를 올리는 데 집중해왔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금융 시대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금융 서비스의 포용성과 접근성 확보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은행들이 단기적 비용 절감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모든 세대와 계층이 소외되지 않는 금융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아니 은행년매출이4~7조라며 죽는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