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이란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걸프만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이 중국 배로 위장하는 이례적 현상이 포착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해상 교통 데이터 분석을 통해 최근 일주일간 최소 10척의 선박이 자동 식별 장치(AIS)를 조작해 “중국인 선주”, “전원 중국인 선원” 등으로 신호를 변경했다고 6일 보도했다. 로이드시장협회에 따르면 현재 약 1,000척의 선박이 걸프만과 인근 해역에 발이 묶여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운송의 21~3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이란이 이 해협과 쿠웨이트 인근 해역에서 민간 선박 공격을 감행하면서, 상업 해운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는 2023년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 사태를 능가하는 규모다. 군사적 충돌이 민간 해운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는 ‘경제 전쟁’의 양상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1,000척 인질이 된 글로벌 물류

이란의 공격은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겨냥한 전략적 압박이다.
호르무즈 해협 입구와 쿠웨이트 해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공격으로 인해, 컨테이너선부터 유조선까지 다양한 선박 1,000여 척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란이 특정 국적의 선박만을 선별 공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이다.
선박 운영자들이 중국 배로 위장을 시도하는 것은, 이란과 중국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한 ‘전략적 베팅’이다. 실제로 ‘아이언 메이든’호는 3월 4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때만 일시적으로 신호를 ‘중국 선주’로 변경했다가, 안전 해역 도달 후 원래 신호로 복구했다.
‘중국 배’ 위장술, 정보전의 민간 영역 확산

선박들이 사용하는 위장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 AIS 트랜스폰더의 목적지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다.
선장 권한으로 쉽게 변경 가능한 이 신호는 원래 선박 간 충돌 방지용이지만, 이제는 공격 회피 수단으로 전용됐다. 둘째, GPS 신호를 교란해 실제 위치를 숨기는 방식이다. 해운 데이터 플랫폼 탱커트래커스는 이렇게 위장한 선박들이 화면상에서 서로 겹쳐 뭉쳐 보인다고 지적했다.
케플러 해운 데이터 분석가 매튜 라이트는 “선원들이 특정 국적과의 연관성을 숨기려는 기만술을 동원하고 있다”며 “이는 2023년 홍해 후티 반군 공격 때 처음 나타난 전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란군이나 그 대리 세력이 실제로 중국 관련 선박을 다르게 대우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즉, 이 위장술의 실효성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선원들은 “공격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하고 있다.
해상 교통로 방어,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로 부상

이번 사태는 해상 교통로(SLOC) 방어가 단순한 군사 교리가 아닌, 국가 경제와 직결된 생존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란은 군함이나 미사일 대신 민간 선박 공격이라는 ‘저비용 고효율’ 전략으로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군사력보다 비대칭 전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해운 보험료 급등이 우려되고 있으며, 업계 관계자들은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대안 항로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운송 시간과 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지 못하면, 글로벌 유가 상승과 물류 대란이 불가피하다.
걸프만 해역의 위기는 해군력 투사와 동맹국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시킨다. 민간 선박들이 국적을 위장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지금, 국제사회는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항행권을 보장할 다자간 해상 안보 체계 구축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중국 배로 위장한 선박들의 절박한 선택은, 해상 안보 공백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