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강경파 매체가 내건 9대 종전 조건 중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항목이 중동 외교가에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터키), 이집트, 파키스탄 등 4개국 외교장관이 모인 자리에서 이란의 구상을 사실상 용인하는 기류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철옹성 같던 미국의 중동 내 동맹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흔들리는 친미 연대…조용한 지지 선언
최근 사우디, 튀르키예, 이집트, 파키스탄 4개국 외교 수장들은 비공개 회담을 갖고 중동 정세 안정화 방안을 논의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4개국은 이란이 주장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안에 대해 명시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이란의 해협 통제권 강화가 역내 안보 질서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식의 암묵적 지지가 오갔다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이들 4개국은 그동안 중동 내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파트너 역할을 해 온 전통적인 우방들이다. 따라서 이들이 미국의 뜻을 거스르고 이란의 전략적 요구에 힘을 실어준 것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반전이라는 평가다.
앙숙 사우디의 노림수…명분보다 실리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곳은 이란의 역내 최대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다. 과거 사우디는 예멘 내전 등 곳곳에서 이란과 대리전을 치르며 날 선 대립각을 세워왔다.

하지만 이번 군사적 긴장 국면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미국 편에 서서 이란을 압박하기보다는, 갈등의 불똥이 자국으로 튀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파괴적인 전면전에 휘말리는 것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어느 정도 쥐더라도 역내 무력 충돌을 피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자국의 핵심 경제 비전인 ‘비전 2030’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친미 노선보다 안정적인 안보 환경 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패권의 쇠퇴와 다극화하는 중동
튀르키예와 이집트, 파키스탄의 셈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각자의 지정학적,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미국 중심의 단일 패권에서 벗어나 다극화된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결국 이번 4개국 회담은 단순히 이란의 종전 조건을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이 주도해 온 중동 질서가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요충지에서 이란의 입김이 강해지는 것을 주변국들이 묵인함에 따라, 다급해진 쪽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다.
동맹국들의 예상치 못한 이탈 속에서 미국이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어떤 새로운 외교적 레버리지를 꺼내 들지 국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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