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하며 시작된 국빈 방문은 화려한 레드카펫과 예포로 포장되었으나 그 이면에는 팽팽한 외교적 기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한 인물은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이었다.
겉보기에는 국가의 2인자가 직접 공항에 나온 최고 수준의 예우처럼 보이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를 철저하게 계산된 상징적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체면과 격식을 중시하는 상대방의 성향을 만족시키면서도 실질적인 정치적 양보나 타협의 여지는 주지 않겠다는 베이징의 단호한 의지가 트럼프 방중 첫 일정인 공항 영접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화려한 직함에 숨겨진 실권의 부재

한정 부주석은 국가부주석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 중국공산당의 최고 핵심 권력 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는 속하지 않은 인물이다.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이나 타국 정상의 취임식 등 주로 의전 성격이 강한 대외 행사에 중국을 대표해 참석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는 다가오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이 협상 테이블에서 내어줄 카드가 많지 않음을 시사한다.
실질적인 정책 결정권이나 외교적 타결 권한이 없는 인물을 첫 영접자로 내세운 것은 미국을 향해 전략적 굴복은 없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진 것과 같다.
과거 미국 정부의 국가안보회의에서 중국 정책을 다루었던 전문가들은 중국이 직함이 주는 무게감을 역이용해 겉치레만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 제재와 무역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의전이라는 거대한 상징을 앞세워 시간을 벌고 갈등의 급격한 확산을 막으려는 노련한 외교 전술이라는 평가다.
초강대국 간의 외교 무대에서 공항 영접은 단순한 환영 인사가 아니라 향후 이어질 치열한 회담의 기조를 결정하는 첫 번째 정치적 방어선으로 작용한다.
의전 역사로 보는 미중 패권 경쟁
중국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방중마다 공항에 내보내는 인물의 급을 조율하며 자신들의 외교적 입장을 전 세계에 피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구 년 전 상황과 비교하면 이번 의전의 성격은 한층 더 명확해진다. 이천십칠년 공항에 직접 나와 영접을 주도한 인물은 중국 외교 정책의 총괄 사령탑이자 정치국 위원이었던 양제츠였다.

명목상 직함을 떠나 실질적인 외교 권력을 쥔 실세가 직접 움직였다는 점에서 당시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중국 당국의 모종의 기대감이 반영된 조치였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영접 역사도 중국의 이러한 치밀한 의전 정치를 뒷받침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이천구년 처음 베이징을 찾았을 때는 당시 국가부주석이자 차기 최고지도자로 이미 낙점되어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시진핑이 직접 공항에 등장했다.
반면 미국이 본격적인 아시아 견제 정책을 펴기 시작하며 긴장감이 돌던 이천십사년 방중 당시에는 장관급인 왕이 외교부장이 영접을 맡아 뚜렷한 온도 차이를 보인 바 있다.

결국 이번 한정 부주석의 공항 영접은 미국이라는 최강국 정상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는 챙기되 과거처럼 과도하게 자세를 낮추거나 영합하지 않겠다는 현 중국 지도부의 강한 자신감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한층 격화된 미중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중국은 상대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외교적 수사를 구사하면서도 핵심 안보와 경제 이익에 있어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것임을 선언했다.
겉으로는 부드러운 미소와 악수가 오갔지만 막을 올린 정상회담의 본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냉혹한 외교 전쟁이 펼쳐질 수밖에 없음을 이번 영접이 미리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