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서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던 LNG 운반선들이 갑자기 방향을 틀고 있다.
유럽을 향하던 선박들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향하는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2026년 3월 4일부터 8일 사이 최소 3척의 선박이 이런 선택을 했다. 미국산 2척과 나이지리아산 1척이다.
이 극적인 항로 변경의 배경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초유의 사태가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이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하루 138척이 오가던 통행량이 2척으로 급락했다.
문제는 이 해협을 통해 전 세계 LNG 거래의 20%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특히 카타르와 UAE가 생산하는 LNG는 이 해협이 유일한 출항로다.

호르무즈 봉쇄는 곧바로 공급 대란으로 이어졌다. 카타르의 QatarEnergy는 3월 4일 주요 수출 터미널인 Ras Laffan의 조업 중단을 선언했다.
최소 1개월 이상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카타르 LNG의 80~85%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향하던 물량이었다. 중국, 인도, 한국이 그 주요 수입국이다.
2022년과 정반대 풍경, 이번엔 아시아가 ‘절박’
LNG 선박의 항로 변경은 2022년에도 있었다. 하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당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잃자, 아시아로 향하던 선박들이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의 절박한 수요가 아시아를 압도했던 것이다.
2026년 3월 현재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아시아의 카타르 LNG 의존도(80% 이상)가 유럽의 의존도(4% 미만)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석 기업 Kpler는 “대체 공급원이 카타르 손실분을 보충할 수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미국과 호주는 이미 높은 가동률 상태이고, 나이지리아, 알제리, 트리니다드는 공급 가스 확보 자체에 제약이 있다.
실제로 월간 부족분 580만 톤 중 현실적으로 추가 공급 가능한 물량은 200만 톤 이하다. 대체 공급으로 겨우 34%만 충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미국산 LNG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박비 7배 뛰어도 아시아 프리미엄이 더 크다
그렇다면 선박들이 왜 굳이 더 먼 아시아로 방향을 트는 걸까. 답은 가격 격차에 있다. 3월 4일 기준 아시아와 대서양 간 가스 가격 스프레드는 5.10달러/MMBtu에 달했다. 운송 거리가 길어도 아시아에 팔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선박 운임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걸프만에서 아시아로 가는 노선의 운임은 2월 25일 하루 4만2000달러에서 3월 초 30만 달러로 약 7배 급등했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노선도 하루 30만 달러로 전주 대비 26만 달러나 올랐다. 업계에서는 아시아 노선 운임이 하루 10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에너지 시장 분석가들은 “선박비 급등이 역설적으로 아시아 전환을 일부 제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30만 달러 수준에서 선박 임차를 꺼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현물 시장의 아시아 프리미엄이 이런 비용 상승을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도 안전지대 아니다… 4월 ‘저장소 전쟁’ 예고

아시아의 높은 가격이 글로벌 LNG 물량을 빨아들이면서 유럽도 간접 타격을 받고 있다. 유럽의 가스 가격은 3월 3일까지 30유로/MWh에서 60유로/MWh로 거의 두 배 뛰었다.
카타르에 대한 직접 의존도는 낮지만, 전 세계 LNG가 아시아로 쏠리면서 유럽이 확보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줄어든 결과다.
더 큰 우려는 4월부터 시작되는 가스 저장소 충전 시즌이다. 유럽은 매년 4월부터 겨울 대비 저장소를 채우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아시아와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나이지리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 포르투갈 에너지 기업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아시아에 판매한 전례가 있다”며 “유사한 계약 이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는 최소 4주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상 운영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2개월간 카타르 공급 손실이 확정된 셈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들은 LNG 가격이 더 오를 경우 석탄 사용 제한 완화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