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병사들의 복무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병장 기준 기본급과 자산 형성 지원금을 합쳐 월 200만 원을 수령하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목돈을 마련해 전역하는 요즘 장병들의 모습과 청년층의 자유로운 소비 행태를 지켜보며, 5060세대 예비역들은 과거 자신들의 혹독했던 병영 시절을 떠올리는 모습이다.
한 달 내내 고된 훈련을 받고 손에 쥐었던 월급 1만 원으로 어떻게든 생존해야 했던 1980년대와 90년대 군번들에게, 현재의 넉넉해진 처우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담배 한 갑도 계산하며 샀던 1만 원의 무게

1990년 무렵 병장의 월급은 약 1만 원 안팎에 불과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물가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한 달 동안 내무반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보급품 외에 개인적으로 필요한 세면도구를 사고, 부대 내 매점인 피엑스(PX)에서 간식이라도 몇 번 사 먹으면 월급은 며칠 만에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당시 주로 디스(This)나 88 등 몇백 원 하던 담배 한 갑을 사 피우는 것조차 남은 예산을 치밀하게 계산해야 가능했던 일종의 사치로 통했다.
휴가를 나갈 때면 부족한 차비를 충당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피엑스 출입을 끊고 악착같이 동전을 모으는 장병들이 부지기수였을 정도다.
피눈물로 부었던 군인 적금의 추억

더욱 놀라운 것은 이토록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 적금을 붓는 병사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역 후 복학이나 사회 진출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단돈 몇만 원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쥐꼬리만 한 월급의 일부를 떼어 정기 적금에 가입하는 생존형 짠테크가 유행하기도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선임들이 사주는 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개인적인 기호품 소비는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지독한 경제 관념이 내무반을 지배했던 셈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당시 장병들의 이러한 억척스러운 저축 습관이 훗날 외환위기 등 혹독한 경제 한파를 견뎌내는 5060세대 특유의 강인한 생활력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우린 그렇게 버텼다” 5060 예비역의 묘한 자부심

최근 일부 청년층 사이에서 현재의 만족을 중시하는 소비 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보며, 5060 예비역들은 과거 자신들의 눈물겨웠던 경제적 독립기에 대해 묘한 자부심을 드러내곤 한다.
없는 살림에도 이 악물고 버티며 미래를 준비했던 자신들의 청춘이, 비록 물질적으로는 빈곤했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턱없이 열악했던 처우를 무조건 미화할 수는 없겠지만, 월급 1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낸 치열한 생존의 기억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중년 가장들에게 여전히 든든한 마음의 훈장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비록 시대는 변하고 병영의 환경은 상전벽해를 이루었지만, 그 시절 아재들이 1만 원 지폐 한 장에 담아냈던 삶의 무게만큼은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진한 여운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