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 ‘섹시 디바’들의
풋풋했던 어린 시절 재조명
tvN 예능 ‘식스센스’, MBC ‘놀면 뭐하니’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시의 과거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제시 연한 화장’, ‘제시 청순했던 시절’ 등의 제목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들에는 제시의 과거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외모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사진 속 제시는 순한 눈매와 옅은 화장, 해맑은 미소로 최근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쎈 언니’의 대명사가 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제시의 과거가 공개되면서 제시처럼 ‘쎈 언니’ 포지션에 있는 여자 연예인들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그들의 과거 사진을 살펴보면 대부분 지금과는 다르게 풋풋하고 여려 보이는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씨스타 효린
가창력으로 유명한 걸그룹 씨스타에서 메인 보컬을 맡은 효린은 국내 ‘쎈 언니’ 계보의 대표 주자이다. 그런데 그의 고등학생 시절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다르게 풋풋한 모습이다.
한편 효린은 과거 한 방송에서 군 장교 출신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방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효린의 말에 따르면 통금 시간이 8시까지였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통금 시간을 잘 지키긴 했지만, “놀 때는 정말 화끈하게 놀았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효린은 걸그룹 멤버 최초로 1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솔로 활동, OST, 피처링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인의 솔로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기도 하며 작곡, 작사에도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다.
방송에서는 건강하고 활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상당히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뱃속에 복수가 차 있어서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들어갔고, 담도폐쇄증 등으로 두 차례의 개복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로 인해 효린의 몸에는 쓸개와 맹장이 없으며, 개복 수술 흉터 때문에 배를 드러내는 의상은 입지 못한다. 한 방송에서 “비키니를 떳떳하게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은 흉터를 가리기 위해 복부에 문신을 새겼는데, 평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지라 종교적 의미가 담긴 십자가 문신을 선택했다고 한다.
청순한 외모인데 별명은 ‘야생마’였던 반전 매력의 현아
지금은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현아는 2007년 걸그룹 원더걸스를 통해 처음 데뷔했다. 당시에는 미성년자이기도 했고, 지금과는 다르게 깜찍하고 발랄한 컨셉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원더걸스 탈퇴 후 2009년 걸그룹 포미닛으로 재데뷔를 하고, 장현승과 ‘트러블 메이커’라는 이름의 유닛으로도 활동하면서 그의 컨셉은 많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그는 ‘놀 줄 아는 쎈 언니’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현아의 과거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무척 다르다. 화장기 없는 민낯에서 ‘쏀 언니’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청초하고 순수한 분위기를 풍긴다.
사실 현아는 외모만 놓고 보면 ‘청순 미인’에 가까운 생김새를 지녔다. 그런데 현아는 원더걸스 시절에도 멤버들 중 성격이 가장 활발하고 장난기가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야생마’라는 별명도 붙었다.
현아는 2010년 ‘체인지’로 솔로 데뷔를 한 후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을 꾸준히 병행해왔다. ‘버블 팝’, ‘아이스크림’, ‘빨개요’, ‘잘나가서 그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이톤의 개성 있는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댄스와 퍼포먼스 실력이 뛰어나다. 박진영이 중학교 2학년에 불과했던 어린 현아를 원더걸스의 멤버로 뽑았던 것도 춤 실력 때문이었다.
현아가 첫 솔로곡 ‘체인지’를 발표했을 때 그의 나이는 만 17세였다. 걸그룹 최연소 나이로 ‘쎈 언니’ 컨셉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솔로 커리어는 성인이 된 후 발표한 ‘버블 팝’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그는 엄정화, 이효리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디바’로 자리매김했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솔로 여가수 중 하나이다.
고등학생 때 홀로 상경해 가수 생활을 시작한 마마무 화사
화사는 본인이 속한 그룹 ‘마마무’ 내에서 독보적인 ‘쎈 언니’ 캐릭터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의 중학교 졸업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지금과는 다르게 ‘풋풋한 소녀’ 그 자체여서 놀라움을 이끌어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홀로 상경하여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전부터 이미 뛰어난 실력을 보여 여러 가수로부터 피처링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솔비, 팬텀, 스탠딩 에그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악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신인도 아닌 연습생 신분으로 기성 가수들의 피처링을 맡았다는 것은 화사의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마무의 프로듀서 김도훈은 화사에 대해 “팀의 색깔을 만들어주는 멤버”라고 평했다.
작곡가 박우상은 “화사는 아티스트적인 면이 많고, 같이 작업을 하면 센스도 좋아서 훌륭한 뮤지션이 될 만한 재목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감미로운 음색과 절묘한 강약 조절, 타고난 감성과 다양한 창법까지. 화사가 가수로서 지니고 있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활동의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 요정’에서 ‘원조 걸크러쉬’로 변신한 이효리
이효리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걸그룹 핑클의 서브보컬 겸 메인 댄서로 활약했다. 지금은 ‘쎈 언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되었지만, 핑클 시절의 모습은 ‘여리여리’ 그 자체이다.
‘텐 미닛’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컨셉을 가지게 된 그는 원래 청순함의 대명사였다. ‘국민 요정’으로도 불렸던 핑클의 멤버였기에 ‘텐 미닛’을 통한 변신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공주님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이효리는 상당히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충북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2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상경했는데, 이때 부모님의 전재산이 500원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전재산으로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새끼를 낳아 팔고, 친인척에게 돈을 빌려 8평 크기의 이발소를 차렸다. 그 작은 이발소에서 여섯 식구가 먹고 자며 가난하게 살았다고 전한 바 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린 시절 그의 별명은 ‘못난이’였다고 한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데다 집안에 빈대와 이가 많아서 머리를 짧게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는 핑클로 대성공을 해 ‘국민 요정’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에는 솔로 활동으로 연달아 히트를 터뜨리면서 ‘원조 걸크러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가수로서 최정상에 오른 뒤로는 ‘효리네 민박’ 등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에서 소탈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