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특히 공공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국립대병원조차 고액의 VIP 회원제 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의료 서비스가 사실상 자본에 의한 ‘프리미엄 등급제’로 나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환자의 중증도나 위급성이 아닌 지불 능력에 따라 병원 내 혜택이 차등 적용된다는 통계가 속속 드러나면서, 진료 대기와 병상 부족에 시달리는 일반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연회비 2,600만 원 내면 열리는 ‘VIP 트랙’
논란의 중심에 선 곳은 국가 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이다. 2025년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는 연회비가 최대 2,600만 원에 달하는 ‘프리미어 CEO’ VIP 회원제를 운영해 왔다.

이 프로그램 가입자에게는 전담 주치의의 맞춤형 건강검진, 전용 VIP룸, 전담 간호사 코디네이션은 물론 본원 외래 연계 서비스 등이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VIP 검진 사업 규모가 공공병원의 부수적인 활동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는 프리미어 CEO 등 개인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최근 3년간 연평균 601억 원의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수익 창출 과정에서 병원의 핵심 자원인 다수의 교수진이 VIP 검진에 투입된 사실이 알려지며, 필수의료 인력 부족을 겪는 현실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대기기간 단축을 주요 정책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반 환자들에게 대형병원 진료 대기는 여전히 가장 큰 의료 불편 중 하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외래 진료 대기기간이 30일 이상인 환자가 상당수인 상황에서, 고액 검진 이후 본원 외래 연계가 제공되는 시스템은 ‘돈이 있으면 병원 안에서도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돈에 따라 갈린 병상… VIP는 8.1일, 일반은 5.9일
입원 병상 이용에서도 자본에 따른 격차가 수치로 확인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윤 의원실이 공개한 2020~2025년 서울대병원 특실 입원 현황을 보면, 일반 특실 환자의 평균 입원일수는 5.9일인 반면 VIP 회원은 8.1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적인 병상 부족 사태가 벌어졌던 코로나19 확산기에는 격차가 극에 달했다. 2021년 전체 특실 환자의 평균 입원일수가 4.8일로 줄어들었을 때, VIP 회원의 평균 입원일수는 20.8일로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심지어 한 VIP 회원이 464일 동안이나 특실에 장기 입원한 사례까지 공개되며 공분을 샀다.
병원 측은 고가 검진 등 부대 사업 수익이 병원 운영과 연구 재원 등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반 환자들이 긴 대기와 짧은 진료, 빠른 퇴원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서, 공공병원의 고가 회원제 운영은 진입 장벽을 높여 의료 접근성 격차를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필수의료 체계가 붕괴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아픈 순간마저 자본력에 밀려나야 하는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