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시장에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친 가운데, 삼성SDI가 미래 생존을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당장 필요한 천문학적인 배터리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가 가진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을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급한 불을 끄고 재무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묘안이지만, 매년 쏠쏠한 현금을 안겨주던 ‘마르지 않는 샘물’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11조 원의 실탄 장전과 주주 친화적 선택
삼성SDI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보유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매각 규모는 장부가 기준 10조 1000억 원이며, 시장에서는 최대 1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삼성SDI는 배터리 사업 악화로 1조 7000억 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올해에만 3조 원 이상의 막대한 시설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회사는 1조 6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주식 가치 희석을 우려한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자금을 쥘 수 있는 우량 자산 매각이라는 현실적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매각으로 삼성SDI의 부채비율이 현재 79%대에서 50%대 중반까지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유력한 매수자는 삼성전자, 100% 자회사 편입 초읽기
시장의 관심은 이 거대한 우량 지분을 누가 사들일 것인가에 집중된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새 주인은 다름 아닌 같은 그룹 내의 삼성전자다.
현재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84.8%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삼성SDI가 내놓은 나머지 지분까지 모두 흡수하게 되면 삼성디스플레이를 완벽한 100%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게 된다.

최근 반도체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면서 삼성전자의 자금 여력이 한결 나아진 점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더한다. 다만 비상장사임에도 확실한 이익을 내는 회사인 만큼, 글로벌 재무적 투자자나 자산운용사가 지분 인수에 눈독을 들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상가 팔아 목돈 쥐었지만, 매달 들어오던 월세는 끊긴다
이번 매각으로 삼성SDI는 단숨에 11조 원이라는 든든한 실탄을 거머쥐게 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뼈아픈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같은 삼성 그룹 안에서 지분이 이동하는 것이지만, 각 회사의 주머니 사정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에만 2조 원의 영업이익을 낸 그룹 내 최고 알짜 회사다. 그동안 삼성SDI는 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발생하는 쏠쏠한 배당금과 장부상 이익을 자기 회사 통장으로 챙길 수 있었다.
이는 마치 꼬박꼬박 월세가 들어오는 우량 상가를 가지고 있던 것과 같다. 본업인 배터리 사업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이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 덕분에 재무적인 타격을 줄이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 11조 원의 목돈이 당장 생기는 대신, 매년 들어오던 이 달콤한 부수입은 영영 끊기게 된다. 이제 삼성디스플레이가 버는 모든 돈과 혜택은 지분 100%를 가지게 될 삼성전자의 몫으로만 돌아간다.
결국 삼성SDI는 든든한 재무적 안전장치를 스스로 없애는 대신, 확보한 목돈으로 배터리 사업에 회사의 모든 명운을 걸게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월 월세를 주던 상가를 팔아 본업인 배터리 공장에 완전히 올인한 셈이라며, 향후 배터리 시장에서 얼마나 빨리 압도적인 경쟁력을 증명하느냐가 기업 가치를 좌우할 핵심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