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원전 시장 미국에 내주고
수천억 비용 지불 약속한 불평등 계약
첫 수출 사례마저 적자로 전환

한국 원전 기술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내 원전 기업들이 미국과 맺은 합의가 한국 원전 산업의 독자적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계약으로 핵심 시장 진출이 차단되었을 뿐 아니라, 첫 수출 사례마저 적자로 돌아서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 원전 산업의 족쇄가 된 ‘글로벌 합의문’
19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이 올해 1월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으로 인해 한국 원전 기업들은 북미, 유럽, 우크라이나 등 핵심 시장 진출이 사실상 차단됐다.

이 합의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는 웨스팅하우스만 수주가 가능하고, 한국 기업들은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일부 지역으로만 활동이 제한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한수원과 한전이 원전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에 원전 1기당 4억 달러(약 5,600억원)의 신용장을 발급하고, 6억 5,000만 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 조건에도 합의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은 한국 원전 산업의 글로벌 활동에 심각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합의 이후 한수원은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에서 폴란드 원전 사업 철수를 공식 확인했으며, 스웨덴, 슬로베니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이미 수주 사업을 중단했다.
한국이 가진 ‘기술 자립’의 허상
한국 원전 산업이 직면한 이러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기술적 종속 관계에 있다.
APR-1400 원자로는 많은 부품과 시스템이 국산화되었지만, 그 기본 골격인 가압경수로 시스템(PWR)은 웨스팅하우스가 1957년 개발한 원천기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국회에서 “기술 자립과 원천 기술에 대한 이해를 국민들께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핵심 기술에 대한 종속 관계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원전 산업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글로벌 합의문’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된 것이다.
첫 수출 사례마저 적자로 전환
기술적 종속 문제와 더불어, 한국 원전 산업은 수익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첫 해외 원전 수출 사례인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이 적자로 전환된 것이다.

19일 연합뉴스 분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UAE 원전 사업 등’ 항목의 누적 손익은 349억 원 적자를 기록했으며, 수익률은 -0.2%로 떨어졌다.
2009년 약 22조 6천억 원에 수주한 이 사업은 당초 2020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2024년까지 지연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한전과 한수원은 1조 4천억 원의 추가 비용을 놓고 런던국제중재법원까지 가는 법적 갈등을 빚고 있다.
이에 한전은 “UAE 원전 사업의 성과는 단순 건설 수익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와 양국 협력 등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며 “60년 운영 기간 동안의 전력 판매 배당 수익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